오늘 본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 불우한 자들을 사랑하시는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리고 본문이 길고 주제가 두가지라 내용이 너무 많다 싶기도 했습니다.
이틀로 나누지,,,, 하며,,
그런데 두번 세번 읽다보니 7년째 빚을 탕감해주고 종에게 자유를 주라 하는 것이
더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탕감받고 놓임을 받는 사람에게는 육적인 유익을 주지만
빚을 면해주고 종을 놓아주어야하는 돈많은 주인들은 속이 쓰렸겠다 싶었습니다.#65279;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진정한 소유권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먹고 안전한 차를 타고 비내려도 안심인 집에 살지만
어떤 사람은 패스트푸드를 주로 먹고 버스타고 다니며 비만 오면 근심이 되는 곳에 삽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건 100% 개인의 책임은 분명 아닙니다.
그저 내게 허락된 환경과 소유가 내가 잘나서 된것이 아니며 궁극적으로 내것이 아님을...
하나님이 세상에 허락하신 것들을 형제들과 나누라 하심은
네가 벌고 네것이라고 법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네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기위함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재산권에서 시작을 하니,,,오늘 본문은 현대의 사상과 맞지 않습니다.
또한 19절부터는 소와 양의 처음 난 수컷을 구별하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라고 합니다.
처음 난 것, 첫 양,,,
흠이 없는 것을 드리라 하십니다.
21절에 흠이 있는 것은 드리지 말라 하십니다.
결론: 내가 가진 것은 내것이 아니며
내것이 아닌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는 흠이 없는 것을 드려라..
남편 지갑이 잘 안열리고 친정인 애굽에서 나오기로 하니
직장다니고 저쓰고 아이 먹이고 입히다보면 돈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저는 점심 먹고 꼭 라떼나 아메리카노를 사먹습니다.
사먹으면서 부족합니다.
나누면서 내것을 나누어 준다고 마음으로 생색도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흠이 없는 것을 드려야 하는데
흠이 많은 채로 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설쳐대면
하나님께서 무척 곤란하실 것 같습니다.
첫양과 첫 새끼...
흠이 없는 것을 드려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흠이 많은데 그것들 그대로 드리겠다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막보는 것입니다.
흠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드렸으니
내가 십자가로 깨끗하게 되어야만 드릴 수 있는데
내가 하나님께 내것을 드린다고 하니 얼마나 착하냐 하며 내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었던 모습
얼마나 많았던지요...
동우가 어제 저녁에 잠자리에서 묻습니다.
동우: 엄마 애굽하고 가나안은 어디야?
엄마: 응?
동우: 우리는 지금 애굽에 있어? 아니면 가나안에 있어?
엄마: 가나안.....
"쿨쿨,,,,"
대답하면서 찔립니다.
지금 본문은 애굽도 가나안도 아닌데...
지금 저의 모습은 내것을 내것이라 주장하며
흠이 있는 채로 드린다고 설쳐대고 있는 중인데...
오늘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