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1;17-25
유다는 사랑이 많은 사람같습니다. 어제도 사랑하는 자들을 부르며 힘써 싸우라고 하더니 오늘도 2번이나 사랑하는 자들이라 불러줍니다. 그 부름이 애절하게 들리고 간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이면서 예수님 생전에 믿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며 비난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뒤 기다려 주신 그 사랑을 깨닫고 통곡의 회개를 하고 돌아오지 않았을까, 내 마음대로 상상해 봅니다.
또 그 엄청난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받았을 충격도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직접하신 얘기를 말하지 못하고 자신을 사도보다 낮게 여기며 사도들의 미리한 말을 기억하라고 한 것 같습니다.
유다의 한마디 한마디에 간절함이 묻어있고 눈물이 스며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 되어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나는 마지막 때의 말씀으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요즘은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 시대의 흐름같습니다. 지금 TV 컴퓨터 스마트폰를 켜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과 사진들이 많습니다. 혼전순결은 과거의 단어가 되어가는 것같고,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관이 되었고, 말하는 것 자체로도 조롱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순결에 대한 가치관의 분열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육에 속한 자와 성령이 없는 자는 이것으로도 분별이 됩니다.
위험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그 안타까움으로 다시 사랑하는 자들이라 불러줍니다. 그리고 단단히 당부를 합니다.
200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동일하게 적용해야할 당부요 부탁이요 명령입니다.
그래서 진리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 적용을 잘하지 못합니다. 적용을 못하니 나눔을 쓰기 싫어집니다. 그냥 읽고 묵상하고 아는데 까지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 그 자리입니다. 믿음의 진보가 안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은 나와 대화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갖은 핑계와 변명을 대며 기도를 안하거나 시간을 줄입니다. 사단의 방해라고 생각합니다. 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만 하고 행함이 없는 자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 사랑은 내 머리속에서 멈춰 있다가 지워지기도 합니다.
손발로 익히는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지금 형편이 싫어서 영생의 천국을 꿈꾸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세상의 부귀영화가 나에게 있고 행복이 있다면 나는 애써 천국을 기억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고난이 축복입니다.
주님.
유다의 간절한 당부대로
악한 세대의 휩쓸리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약함을 용서하옵시고
긍휼히 여길자를 긍휼히 여기는
은혜을 주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의심하는 자들에게 화내지 않고 정죄하지 않고 사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