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심(행16:19-40)
작성자명 [윤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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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18
주님은 어떠함에도 구원의 관점에서 일하시는 걸 오늘도 깨닫습니다.
베드로도 세 번이나 옥에 갇혔었는데 바울과 실라 역시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든든히 지키라하였지만 또 옥문은 열립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갇혔을때 다른 점은 베드로에게는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고...
또 12장에서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급히 일어나라고 하여 쇠문이 열린고로 파숫꾼들을 헤롯이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오늘 바울은 큰 지진이 일어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고 모든 매인 것이 벗겨져도 도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간수와 그 집에 있는 가족들의 구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얻을 믿음이 있는 줄 아신거겠지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단순한 진리가 왜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지진이라는 천재지변까지 동원하시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는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러서야 비로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묻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일하시는 주님을 이 시간 묵상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매도 많이 맞고 성한 몸도 아니었을텐데 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주님께 찬양할 수 있을까...생각합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자신에 비하면 어찌보면 양호할 수 있고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했던 믿음의 선배가 있었기에 당연하다고 받아 들이기가 수월했을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를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믿음이 모든게 가능하지 않았나 합니다.
내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은 바울이고 나는 나인것...
그러면서 바울같지 못함때문에 갖는 부담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스데반과 야고보가 순교를 했어도...
여전히 난 살아야 하고...
바울이 옥에 갇혀 있어도 난 우리 가정의 구원의 사건임을 인정하면서도 풀려 나오고 싶은 조급함과 안일함 그리고 가끔은 구원이 아닌 세상을 바라봤을때 느끼는 절망감...
그러면서 난 아직도 참 안되었구나 하는 거기서오는 거리감...
그래도 한가지 감사한건 세상에 기대지 않고 주님만 바라려고 하는 회개가 말씀을 통해 이루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약하지만 그 힘으로 유진이를 하나님께 나가도록 돕는 중간 역활을 감당합니다.
우리 가정에 구속사를 보지 못하면 절대로 이해할 수없고 인내할 수도 없는 그 힘든 길을 바울처럼 찬양하면서 가야겠다는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우리 가정을 사랑하심으로 받겠습니다.
골프 선약으로 남편이 주일성수를 못했을때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라고 하셨고...
누나 고난으로 하나님에게 마음을 떠났던 경재에게는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에서처럼 되지 말라고 경고하셨고...
유진이에게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라며 복의 근원이여 축복의 통로라고 말씀하시며...
내 안에 헤롯을 몰아내어 말씀이 흥황해 지도록 인도하시는 주님께...
오늘은 가족들끼리 찬양을 드리며 감사할 조건들을 나누겠습니다.
밧모섬에 갇혀서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던 요한처럼...
그 발에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때까지라 하는 요셉처럼...
저희 가정에 말씀이 응하기를 간구합니다.
한가지 더 바램이 있다면 요즘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말씀대로 이방인인 불교법전을 배우는 회사 분들에게도 복음의 씨를 뿌렸는데 열매 맺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옥문이 열려도 풀려 나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간수의 구원때문에 도망하지 않은 바울처럼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갖아 보겠습니다.
구원...그것만 붙잡을 수 있다면 모든 문제의 해결일텐데...
구원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