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축복의 통로임은 분명하지만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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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18
2007-10-18(목) 사도행전 16:19-40 ‘고난이 축복의 통로임은 분명하지만’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루디아와 그 집이 구원을 받더니
오늘은 간수와 온 가족이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1, 2, 3...
빌립보에서의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특별히 고른 사람들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고난은 간수에게 임한 축복의 통로가 되었고
간수는 가족 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습니다.
그런데 간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은
구원 받은 후의 그의 행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임을 감안할 때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에베소서 2장의 말씀으로 그 이유를 유추해보았습니다.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이방인인 루디아나 간수나 이제는 멀리 있던 자가 아닙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예수 안에서 성전이 되기 위하여 쓰임 받을 때
주춧돌부터 기둥과 서까래, 작은 못 하나까지 각자의 쓰임새가 다르듯
하나님 나라에서의 성도의 역할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역할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옥에서 나온 바울이 다시 간수의 집으로 가지 않고 루디아의 집으로 간 것은
그 집이 넓고 루디아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밤새 걱정하며 기도했을 형제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 없는 간수가 될 것이냐
사도의 형제로 그 이름을 남길 것이냐...
믿음의 분량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생업에 열심을 다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들교회 우스개 소리 중에
고난 없는 게 고난이라는 말이 있지만
좋은 집에 사는 걸,
고난이 없는 걸 고난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난이 축복의 통로임은 분명하지만
고난을 통해서만 축복이 임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문 너머 타워 팰리스에 살지 못하는 건
수치도 아니지만 자랑도 아님에
그 집을 동경하는 아내를 정죄하는 위선을 내려놓고
아내의 큰 집에 대한 소망이 큰 믿음에 대한 소망으로 바뀔 수 있도록
아내가 닮기를 원하는 믿음직한 남편부터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