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사의 열심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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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17
2007-10-17(수) 사도행전 16:6-18 ‘구속사의 열심’
단속에 항의하다가 노점상 공동체의 회원이 하나 죽었습니다.
그 일로 고양 시청에 몰려가느라 영업을 하루 쉬었는데
나는 노점상에 끼워주지 않는 아내 때문에 뉴스 보며 애만 태우다가
새까매진 코끝으로 집에 돌아온 아내를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14 ...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루디아는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씀을 청종함에 성령이 임하여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그녀가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하나님이 계획하신
유럽 대륙에서의 하나님 나라 건설이 첫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 한 바울의 발길을 마게도냐로 돌리게 해서
지금의 그리스 북동부 해안에 있던 빌립보에 이르게 하신 것도 성령이고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아 성문 밖 강가에 나갔던 바울 일행과
루디아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성령임을 본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말씀이 없던 시절, 이방인으로서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30년 이력의 내 믿음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도 그랬지만 하나님을 믿기에 예배드리러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음을 봅니다.
목장에 그런 동생을 둔 지체가, 동생의 구원을 방해하는 사단이 자신이라며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자신의 삶을 회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지체를 보면서, 누구에게나 있는 본능적 위선, 자존적 교만,
언행의 불일치 같은 사소하게 생각하기 쉬운 죄의 문제에 있어서나
도덕이라는 세상의 기준으로도, 믿지 않는 사람과 구별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순도와 생활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런 자세가 중요한 것은, 본문의 내용처럼
개인의 구원은 가족의 구원으로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족으로 묶어 주시고
그 마음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허락하심은
구원의 길을 함께 가도록 하기 위함일 겁니다.
너와 내가 만나 가족이 되고 믿음의 형제로 우리 되게 하심은
나 혼자 이루기 힘든 거룩도 공동체의 중보로 이룰 수 있는 바,
개인의 거룩이 공동체의 거룩으로 하나님 나라의 거룩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루디아가 예수 믿고 가족까지 세례를 받은 후에 가장 먼저 한 거룩한 일은
주의 종들을 섬김에 강권함도 마다하지 않은 구속사의 열심이었습니다.
그러한 섬김이 있었기에 고넬료나 루디아나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었음을 보며
나와 가족과 공동체를 거룩으로 이끌어주실 아버지를 불러봅니다.
아버지, 아내의 성품에서 나오는 열심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구속사의 열심 되게 하여 주시고
아내와 나, 하나 된 우리로 하나님 나라 섬기며
남은 연한을 채워가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