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의 역할도 배워야 감당할 수 있다...
작성자명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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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16
바울과 바나바가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이별도 아니고 작별도 아니고 거의 이혼(?) 수준이다.
중간에 마가가 있다.
여보게, 바나바
이번 여행 갈 때 말이네
솔직히..., 마가와 또 같이 일한다는 게 나는... 마음에 걸리네,
주님 일을 하는 중에 그렇게 책임없이 행동하다니...!!
중간에 그의 행동이 우리를 얼마나 낙담시켰었냔 말이네.
어쨌든 난 이번 여행에는 마가와는 함께 할 생각이 없으니 그리 알게.
...난 번번히 자네가 너무 마음이 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왔었는데
또 자네 조카인 마가때문에 우왕좌왕할거라면
인정에 매이지 말고
주안에서 마음을 좀 더 굳건하게 하라고 권하고 싶네.
바나바,
그는 단정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
사람들이 가진 좋은 점들을 찾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그는
역시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도
사람에 대한 수용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주된 기준이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손해를 끼쳤다고 비난받는 것은
그로서는 최대의 두려움.
그런데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자신에 대해 신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자신의 지나친 관대함(우유부단함)으로 인하여
주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 것이다. :|
위로자 라는 별명의 바나바..., 가장 약한 부분에 공격을 받으시고
드디어 언성을 높인다.
그로서는 직접적으로 이야기 한다는 것은... 힘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바울!!!
난 항상 자네가 그리 무뚝뚝하고 매정한 것에 마음이 좀 상해왔었네.
자네의 무심코 한 한마디가 얼마나 상처가 되는 줄 아는가?!!!
그래도 난 자네의 주님께 대한 순수한 열정과 지성에 매료되어 자네와 함께 동역해 왔지.
그런데!!!!
내게 그런 소리를 하다니!!!
평소에 별로 화를 안내던 사람이 작정하고 화를 내면
더 무서워 보이는 법이다.
뚜껑열린 바나바, 갈 데까지 가는 말을 내뱉고야 말았을까...?
자네가 그리 옹졸한 소리를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나와 그리 삶과 죽음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며
큰 은혜를 맛보았던 자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네는 정말 내 조카 마가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난 그가 다만 좀 더 신중한 사람이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하네.
어려서부터 보아왔으니 삼촌인 내가 더 잘알지 않겠나?
마가는 자네와 나의 전도 방법이 너무나 과격하다고 생각했을 걸세.
그는 말이야, 마가복음의 저자란 말일세!!!(각주:그때 이미 지어졌을까...?^^)
자네는 너무 일중심이야!!! 사람을 품을 줄을 모른다고!!
그런 성품이 얼마나 위험한 줄 모르겠나?
자네의 그 열심이 스데반 집사를 죽게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라네!!
아이쿠, 맙소사. :s
바울... 모르긴 해도 바나바와의 싸움이니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을 것이다.
남도 아닌 바나바가 하는 소리이니까 :|
바울의 자연인으로서의 성품은
개척자 정신이 강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관심있는 사람이며
독창적인 해결법을 찾아내는데 달인이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영향력이 없어지고,
또 실패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유형의 사람인 것이다.
바나바가 내 리더쉽에 의심을 품고 있구나!!!
나의 판단과 분별력을 믿지 못한다고?!!!
바나바,
차라리 그만 둠세!!
난 자네를 진정한 내 친구라고 생각해 왔었네.
내가 말에 어설퍼 좀 심한 소리로 들렸기로서니
그 말속에 담긴 뜻을 그렇게 못 알아 듣는단 말인가?
난 마가를 전적으로 못믿는다고 말한 적 없네
난 다만 그가 우리팀으로 동역하기엔 아직 준비되어지지 않다고 판단했고
이번 여행에 마가의 동참을 찬성하지 않았을 뿐이네.
그것이 우리 일에 걸림돌이 될 거라는 내 판단은 결코 틀리지 않을걸세.
그런데도 자네가 만약 계속 고집을 피우겠다면
자네는 자네의 마가를 데리고 자네대로 가시게.
난 나대로 다른 동역자를 찾아보도록 할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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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김양재 목사님 로마서 강해를 처음 들을 때,
어떤 날은 마음에 약바른듯이 마음이 시원하고,
날아갈 듯 가벼워짐을 체험할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약한 심장 부여안고 한시간 내내 떨며 듣다가 :|
지레 자신의 죄를 고백하곤 했었다... :´(
그리고 세월은 흘러...
요즘은 영혼의 씻음을 어느 정도 얻고 제법 강해져서
왠만한 일에는 요동치 않는 새로운 심장을 부여받고^^
새로운 피조물... 감사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주 설교말씀을 듣고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진짜 무서운 적은 아군속에 있다고...?!!!!
모리악의 극본이었다는데...
예수님이 열 두 제자에게 말씀을 전해 주실 때,
사람이 자기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아주 이상한 말씀:s을 전하시자
다른 제자들은 다들 얼굴이 새파래져서...
저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냐고 웅성웅성할 때,
유독 유다만이 예수님의 말씀이 다 이해되어 진다는 듯이
빙그레 웃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당연히 가족 정도는 버려야 되는 것... 아니겠어?!!!
애써...
내 얘기가 아닌 듯이 빙그레 웃어보려 하였다...
그러나, 그래지지 않았다...
마음이 애써 보려 하지 않고싶은 그 문제속에
자기 자신의 내면의 적이 숨어 있는 법이다!!
말씀을 듣고, 듣고, 다시 들었다.
그리고 내가 진짜 잘못하여 회개해야 할 부분과
내 속의 참소자가 거짓으로 정죄하는 부분을 가려 내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발단이 어떻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
내게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쓴뿌리가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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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강한 사람은 자기 하고픈 말 다하고 산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뜻, 자기 의지일 경우에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자기 하고픈 말, 다 못하고 산다.
그런데..., 주님이 시켜도 못하는 것은...?
그 역시 자아가 강한 것이다.
자아가 강하니까 주님이 쓰시기에 유연한 통로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십수년을 함께 해온 동역자들간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문제는 계속 일어나기만 하는데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2005년 정월 대보름날,
큐티 본문말씀 : 시편 8편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주의 하늘과
주과 베풀어주신 달과 별
내가 보오니~
문득 밤 하늘에 뜬 둥글고 아름다운 보름달을 보면서
같은 달이지만 모양은 계속 바뀌어 가는데...
늘 보름달이기를 원하는 나의 욕심...
고정된 역할이 아니라 때를 따라 형태는 바뀌어야 함을 깨닫으면서
각자의 때를 따라 각자의 열할에 순종해야 할 것을 결단하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이 있는 것이고
상대방이 내 입장과 틀리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큐티모임을 할때... 나는 나의 죄를 고백하고 사과를 했다...
나는 상대방이 나를 많이 힘들게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상대방은 더 많이 아프고 힘들어 하고 있었다...
보다 복잡한 이야기지만...,
생략한다.
아직도 진행중인 우리들의 이야기이기고 ^ㅡㅡㅡㅡ^
멀리서고 가까이서고 우리는 큐티엠에서 만나고 있는 징글징글하고도...^^
내가 느끼고 알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소중할
나의 귀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아, 이 모든 일들이
모두 나의 아군속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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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등장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기가 할 일을 하러 떠난다.
갈등자체를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된 평화 또한 해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캐논이요, 진정한 기준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그러기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다만 나에 비해서 네가, 혹은 너에 비해서 내가 그 진리에 조금 더 가까울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떠났을 경우에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옳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
아마도 서로에게서 떠나야 했던 것이 하나님 나라에 좋은 일이었으리라.
그들은 서로서로 좀 더 강하고 담대한 인물이 되었갔을 것임을 것을 미루어 짐작하여 본다...
그리고 그럴수록 헤어져 버린 미숙함을 회개하였을 것이다...
유비가 죽고 없는 제갈 공명은 끝내 삼국통일의 이상을 성취하지 못했다.
유비를 도운 인물이 공명이었지만
정작 공명자신도 유비라는 그릇을 업지 않으면,
자신의 이상을 이룰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관계가...
또한 아군의 위험이 아닐까...?
네가 없으면 난 그 일을 할 수 없어!!
하나님은 서로를 도우며 일하게 하시지만
또한 서로가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우상이 되기를 바라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헤어짐과 만남을 통하여 역사해 가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만 갈등속에서 발견되는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서로의 연약함을 위해 함께 기도해 줄 때에...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자유한 축복의 통로가 점점 탄탄하게 지어져 감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로 점점 거듭나게 될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바라본다!!!({)(x)(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