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그 모양이지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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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16
2007-10-16(화) 사도행전 15:36-16:5 ‘그러니 그 모양이지’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열심으로 싸우는 세속사를 통해서도
구속사를 이루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 사이에, 그것도 가르치는 직분을 가진 신실한 사람들끼리
포용의 문제로 싸움을 벌이고 피차 갈라서는 모습까지는
세속사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 다음 장면에선 그들의 싸움이 구속사의 유익으로 바뀝니다.
환상의 복식조, 바울과 바나바가 각자 짝을 취하여
선교 팀이 두 개로 늘어날 뿐만 아니라
바나바와의 다툼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선교 팀의 의사 결정 구조를 안정된 틀 속에 정착시키기 위해
형제들에게 칭찬이 자자한 디모데를 선교 팀에 합류시킵니다.
또한 반쪽짜리 유대인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 할례 받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바울이 자기의 생각을 바꾼 것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유대인의 전도에 방해가 될 걸림돌을 미리 치우기 위해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유연한 사고의 바탕 위에서 내린 담대하고도 지혜로운 결단이라 생각됩니다.
바나바도 바울과 헤어져 하나님 나라의 구속사를 이루는 행전을 이어갔겠지만
그의 기록이 중단되고 그 자리에 등장한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을 도와 구속사를 이루어 갑니다.
세상 사람은 싸우고 나면 더 친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 백성의 싸움은 더 큰 구속사의 성취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싸움의 원인도 구속사에 관한 일이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지체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내가 준 상처가 더 많고 크겠지만
지적 받아도 인정하기 싫은 인간의 속성대로 내 잘못은 안 보이고
스스로 피해자 되어 작은 상처를 자꾸 덧내곤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처럼 심히 다투지도 못하는 건
내 열심으로 견지하는 교양이 있어서
구속사의 열정도 교양 앞에서는 꼬리를 내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내 체면 내 교양을 먼저 생각하기에
입을 닫고 속으로 정죄합니다. 그리고 남에게 전파합니다.
‘그러니 그 모양이지’
그러니 이 모양인 나를 회개합니다.
구속사를 외치며 구원을 입에 달고 살아도
매일 구원의 길에서 넘어지는 나를 고백합니다.
자녀들의 싸움을 통해서도 구속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나와의 싸움도, 지체와의 싸움도
구속사의 싸움이 되게 하여 주시고
싸움을 통해 내 죄를 깨달아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게 하여주시고
말씀에 충실하면서도 구속사의 성취를 위한
융통성 있는 지혜를 겸비하게 하시어
아직 연약하여 넘어질 때매다 생기는 내 무릎의 상처가
공동체의 믿음을 더 굳건히 하는 약 재료 되어
그 수가 날마다 늘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