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12-20)
그리스도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보이시는 본(16)과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바울의 훈계(20)가 대조됩니다.
죄인 중에 괴수 바울을 충성된 종으로 직분을 맡기기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오래 참으심으로 후에 본이 되게 하십니다 (16). 양심과 믿음을 버린 자들과 선한 싸움을 하라고 바울이 디모데를 격려합니다 (18).
언제 싸워야 하고, 언제 참아야 하나?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족들 사이에도... 다툼의 씨앗은 항상 존재합니다. 전에 젊었을 때는 분명 ‘옳고 그름’으로 싸움의 명분을 따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나의 손익’을 셈하며 싸울 때와 참을 때를 구별한 것 같습니다. ‘손익’은 때로는 ‘명예’가 될 수도 있고, ‘체면’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헷갈립니다. 그 ‘손익’의 대상이 서로 충돌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명예를 선택하자니 돈을 잃게 생겼고, 돈을 선택하자니 체면을 잃을 것 같고... 그래서 갈팡질팡 합니다.
오늘 그 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믿음을 파선케 하는 잘못 믿는 자’에게는 선한 싸움을 하라 하십니다. 기준은 언제나처럼 ‘구속사’인 것 같습니다. 다른 기준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아내와의 싸움은 무조건 참을만 하고, 직장에서 꼭 싸워야 할 대상도 거의 없는 것 같고, 목장에서는 무조건 오래 참을만 한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간혹 보여지는 교회안과 세상속 이단이 싸워야 할 대상인 듯 한데... 그 보다 더 열심히 싸워야 할 대상은 내안에 숨겨진 세상속 욕심으로, 합리화만 찾는 사울의 모습이 아닐지...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적용> 전공의들간의 갈등을 '옳고 그름'이 아닌 '구속사'의 눈으로 해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