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깨워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새벽 5시에 맞춰 놓은
알람소리에 꿈꾸다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잠깐의 꿈이 었을지도 모르는데 밤새도록....
어린시절 어느날을 헤매이다 온것 같습니다.
큐티 본문을 묵상하다 유독 ‘착한 양심을 가지라’는 글귀가 머릿속에
매앰 맴~ 돕니다.
어릴적... 먼 아랫마을 꼬마가 하교길 철도길에 쭈끄리고 앉아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산 고개 너머 아이집 대문앞 까지 업어다 준
일이 있었는데 저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우리엄마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봐서 그랬었다고 하니
그 아이 할머니가 너무 너무 고마워 하더랍니다.
‘딸이 죽을 뻔한 우리 손녀를 살려 줬다고... ’
그 일로 증조할머니부터 여자 4대가 사는 그아이 식구가 온 동네 소문을
내서 ‘누구네집 착한 셋째딸’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도였습니다.^^
그 후 저는 동네에서 착한아이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착한일과 나쁜일에
부딪힐때 마다 무척 힘들었고 더욱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도 세뇌 되었던것 같습니다.ㅠ
그러니 처음교회 와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란 설교를 들었을때 속으로
‘나는 아닌 것 같은데?...’하며 도덕적인 잣대 밖에 모르던 저는 절대
수긍이 안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착하다’는 착각으로 선택했던 모든 일들이
대부분 악한것들 이었고 분별 없었던 행동들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죽겠다는 협박에 한사람 살리겠다는 착함으로 불신
결혼한 것이 최고의 악함 이었고, 나름대로의 정의를 앞세워 따지고
나섰던 일들이 얼마나 분별 없었고 질서에 순종하지 못했던가가
깨달아 졌습니다.
전에는 나의 행위로서의 악함은
‘나는 원래 착한데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과 사람을 만났었다’ 라는 큰
변명과 합리화 속에서 너그럽게 해석하며 스스로를 안위 하였습니다.
지금도 생각할수록 '나' 라는 인간은 구제불능의 속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오래 참으셨던 하나님이 이런 저에게도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는데 그 죄인이 단지
‘행위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적잖은 충격 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힘든 세월을 살며 가족들의 밟힘을 겪으면서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가 진정으로 믿어 졌습니다.
비로서 '나의 나됨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니 한참을
울고 난 후에야 감사함과 함께 불안했던 일상과 마음도 차분해져 갔습니다.
나의 본성이 악하다고 인정하니 이상하리 만큼 자유해 지고 평안한 삶이
시작 되었습니다.
말씀의 가치관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악한것과 착한것이 뒤죽박죽 되어
죄인중에 괴수가 되어 간다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어릴적 동네 어귀 교회에 곰보 목사님이 계셨는데
'나와 여러분은 구더기 만도 못한 죄인!’ 이라고
침 튀기며 설교 하시던 그 모습과 음성이 오늘 새삼 떠오릅니다.
그 목사님은 왜 나를... 구더기 만도 못하다고 하셨을까?.....
나 대신 죽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더욱 묵상하는 하루를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