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바나바의 적용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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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11
행 14:1~18
얼마 전에,
자녀의 결혼을 앞 둔 어느 분과 나눔을 했습니다.
사위 될 사람이,
아주 좋은 직업을 갖고 있고,
외모도 준수하고 돈도 많은데,
집안의 종교가 카톨릭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카톨릭은 불신결혼이라고 했더니..
그 분은 카톨릭은 불신결혼이 아니라고 우겼습니다.
그러면서 혹여 불신결혼이라해도,
솔직히 그냥 결혼을 시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절대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물론 나눔에 오픈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것도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 분 집안과 딸은 교회를 다니고,
사위 될 사람의 집 안은 카톨릭이라고 하기에,
이 결혼은 이미 예상 된 불행이 기다리고 있는거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도 저는,
왜 안되는지에 대해 차분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그 분은 거의 부들부들 떠는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저를 아주 잘 되어 가는 일에 초를 치거나,
불행을 주는 사람 처럼 여기는듯 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믿음이 연약한 분에게 내가 너무 심했나...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되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후로 그 분은 늘 제게 악감 비슷한 감정을 품고 저를 대하다,
결국 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제게 악감을 품고 대하는 그 분과,
오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함께 있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저도 그 분과 그 딸을 하나님께로 돌리려는 마음 보다,
나의 말에 악감을 품는다는 것에 대한 비중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바울의 적용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악감을 품는 자들과 오래 있으며 복음을 전하는 바울.
돌로 치려는 자들에게서는 도망하는 바울.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자들 앞에서는,
옷을 찢으며 말리는 바울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적용의 중심에,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이 목적이 된 바울의 중심을 보았습니다.
신으로 보이고 싶은 죄성이,
제게도 있지 않을까 두렵고 떨림으로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게 악감을 품는 지체와,
오래있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은 없는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