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5:20-27)
어제 목장을 하면서 연신 시계를 들여다 봅니다. 누가 하품을 하는지, 누가 핸드폰에 시선이 가있는지 연신 눈치를 봅니다. 나눔을 1분만이라도 해주면 좋을 걸... 단답식이 되면 쥐어짜서 질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물주는 악한 의도가 있지 않았나요? 이러면 머리에 쥐가 납니다.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목자님, 11시 넘었는데요...’ 아 그렇지... 마지막 눈치를 보고, 마무리 기도를 하니 11시 7분 입니다. 그래도 이런 눈치는 즐겁습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처럼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건지겠느냐(32:14)’ 이런식으로 직접 욕하고 비방을 받는 것이 낫지, 애굽왕 느고처럼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21)’ 이런 표현을 쓰면 정말 헷갈립니다. 왠수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지.... 왠수는 아니더라도 믿지 않는 내 옆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소리’로 듣고 따라야 할지 말지....
정말 어렵습니다.
분별이 필요한데.... 지혜가 필요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 같아도 애굽과 싸우지 않았을까?
현 패권국 ‘앗수르’- 전통 강국 ‘애굽’- 신흥 부상국 ‘바벨론’
애굽은 바벨론을 도와 앗수르의 힘을 억지하려고 했을 국제정세에(왕하 23:29),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북이스라엘을 지켜본 요시야로서는 앗수르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답인가요? ‘눈치’
‘하나님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하는데...
앗수르와 애굽의 눈치만을 너무 살핀 것이 아닌지... 하나님의 뜻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킬 바벨론을 선택해 가고 있었는데, 나의 현실안주로 내 판단만을 고집한 것은 아닌지... 유월절 예배를 온전히 너무나 잘 지키고 있어서 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왜 이때는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선지자에게 묻는 모습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눈치 볼 사람이 많습니다. 매일처럼 아내와 딸의 눈치도 봐야 하고, 환자의 눈치도 봐야하고, 오늘 있을 회의에서 힘있는 사람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오늘 만날 목장탐방식구들의 눈치도 봐야하고... 그리고 이 큐티나눔 독자들의 눈치도 봐야하고...
모두를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눈치’를 우선하기를 원합니다. 매일매일 오늘의 말씀과 기도로 그 ‘하나님의 눈치’를 잘 살펴가기를 소원 합니다. 내 왠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까지도....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나와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의 미래를 어렴풋이라도 눈치챌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이 변장후 활에 맞아 죽는 모습과 똑같이 죽어가는 ‘남유다 최고의 선왕’ 요시야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앞에 너무나 미약한 인간의 모습에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했다(24)’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눈치'를 그런데로 잘 살핀 그런 인생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적용> 오늘의 만남 속에 들려지는 말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