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35;20-27
첫 문장부터 요시야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같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끝낸 후 내가 해야할 성전 정돈을 마친 후에, 이땅에서 누릴 영화는 없는 것이고 천국의 영화를 맞으러 가야겠지요. 그런데 죽음이 허무합니다. 너무도 대단한 요시야가 어제까지는 개인과 인류역사에 영원히 잊어서는 안되는 유월절을 가장 완벽하게 지켜서 예수님을 기억하게한 왕의 죽음으로 믿겨지지 않습니다. 별 인생이 없습니다.
주석에 보니 요시야와 선지자들이 느고의 말을 필시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요시야의 죽음이 슬픈 것이 아니고 요시야의 마지막이 슬픈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합의 죽음과 비슷합니다. 성군 요시야와 가장 악한 아합이 비슷한 죽음을 당한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다같은 죄인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누가 더 큰 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야가 왜 그랬을까?
애굽 따위는 이제 눈에도 안들어 올 정도로 너무 잘나가서 오버한 것일까?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인간인데 방심한 것일까? 자신감이 넘쳤을까? 이것이 인간의 한계인가?
그러면 하나님의 뜻인데 애굽은 왜 갈그미스에서 패했을까?
요시야를 죽였기 때문에? 애굽을 쇠락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요시야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는 자기마음(욕심)이 있었습니다. 애굽을 이기고 싶고 싸워보고 싶어서 속이는 변장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묻지도 아니합니다.
나도 그동안 잘했는데 잘 참고 경건했는데 이정도 쯤이야 하는 봐주시겠지하는 연약한 생각이 가끔 듭니다. 몇 개월 만에 야동을 보고 싶다던가, 적은 돈을 이정도야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요시야를 보니 작은 일도 목숨걸고 결정해야할 것같습니다.
그래도 요시야는 열매가 참 많습니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이 슬퍼하고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어주고 노래하는 남자 여자들이 슬피 노래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으면 누가 나를 위해 슬퍼할까? 내 인생만 슬프게 끝나지는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열매를 심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주님.
모든 사람의 죽음은 슬프고 허무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하시고
유월절의 예수님을 영원히 기억하기 원합니다. Jesus Name Amen
적용>허무한 시간 보내지 않기, 시간계획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