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요시아가 싸우는 장면을 보고 여러가지가 생각이 납니다.
요시아가 율법책을 발견했을 때 여선지자 훌다가 한 예언의 의하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이땅에 내릴 것이다 했습니다.
이당시 아직 바벨론이 세력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 유다를 망하게 할 나라를 요시아는 앗수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해 앗수르를 도와주러가는 애굽왕을 가로막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아들들이 바벨론에 고통을 당할줄 알았더라면 오히려 애굽을 도왔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요시아는 훌다의 예언이 마음에 걸리고 있었는데
애굽이 앗수르를 도우러 간다 하니 앗수르는 내 아들들을 괴롭힐 대상인데 목숨을 걸고 막아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지도에 보니 므깃도 골짜기는 갈릴리 근처로 예루살렘 북쪽이었습니다.
애굽왕이 예루살렘을 피해 북쪽으로 가는 행로를 요시가가 굳이 쫓아가서 막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요시아는 자기 아들들을 위해 기도했어야 하는데
자신의 안에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아들들의 영혼을 위해 싸워야 했는데
성전을 정돈하고 나서 안으로는 다 이루었으니 바깥일에 힘을 쓴 것 같습니다.
나는 애굽왕의 말을 못믿겠다 하며 변장을 하고 전장에 나갔으니
자신은 숨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왕을 호위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생명을 걸고 지키려 하였으나 오히려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슬퍼하고 애가를 불렀다 합니다.
요시아가 애굽의 왕의 말을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것이 아닌데 죽게 하신 것은 너무 슬픈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가 느고왕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듣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목적을 하나님보다 더 우선에 두었기 때문이므로 아무리 무지속에
숨는다 하여도 결국 그 무지 자체가 하나님앞에서 악한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요시아를 위해 애가를 지었지만
정작 불쌍한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이지 요시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시아가 여호와와 사람들 보기에 악을 행하며 살도록 내버려두셨더라면
그것은 요시아에게 더 큰 벌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지켜보려 애썼던 요시아는
결국 살면서 점점 하나님을 대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은 요시아를 사랑하시므로 그를 빨리 데려가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대하를 보면서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주시는 가장 큰 형벌은
죽음이 아니라 죄를 짓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참한 죽음은 단지 이야기의 끝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앞에 선하게 살면서 인정을 받은 요시아,
그러나 하루하루 사는 것이 또한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또다른 상황과 접하는 것임을
오늘 요시아의 싸움을 보며 생각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고 죄를 깨달았다 하여, 마음을 찢었다 하여
내 생각과 내 욕심이 다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생명을 걸고 지키려 하였으나
그것이 오히려 생명을 잃게 하고 지키려 하였던 것을 오히려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
그렇게 슬픈 이야기들이 나의 삶속에, 나의 이웃의 삶속에 너무나 많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서 이세상에서는 유별난 사람으로서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며 또 하루를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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