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_(개역개정) 역대하 35:22,23(묵상 본문은 20~27절)
[묵상]
성전을 개혁하고 잘 준비하여 깔끔하게 유월절 예배를 부활시킨 요시야 왕!
그 길이 결코 일사천리로 쉽게 이뤄지지 않았음은 왕위에 오른 후 18년 만에야 겨우 유월절을 지켰다(19절)는 대목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선대의 악정과 우상숭배로 찌들어 있던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의 폐습에 대해 악전고투하며 조금씩 되돌리고 고치고 회복시키는데 18년이 걸린 것이다.
이제 먼 장정[長程] 을 돌아와 지도층과 백성이 연합하여 그 개혁의 결과를 누릴려는 마당에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요시야 왕은 비명횡사한다.
이상한 사건이라 함은...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바벨론에 의해 앗수르가 멸망하긴 하였지만(B.C. 610년) 아직 바벨론이 본격적인 세력확장을 하고 있지 않은 틈에 애굽(이집트)은 옛 앗수르 땅의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던 것이다.
애굽왕 느고는 이스라엘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예루살렘을 크게 지나쳐 가고 있는 상황인데 요시야 왕이 뒤 따라 올라와 갈멜산맥까지 넘어 므깃도 골짜기에서 가로막고 선 것이다.
아마도 옛 앗수르 지역에 애굽의 지배권이 부활되는 것을 막고 아직 아직 무주공산인 그 지역을 어떻게 해 보려는 욕심이었는지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알 길이 없지만 지금의 형국으로만 볼 때는 남의 나라 전쟁에 쓸데없이 끼어든 것이요. 먹지도 못할 감(옛 앗수르 지역) 찔러나 보는 모양새다.
왜 그러셨을까?
또 이상한 일이 연속된다.
먼저 하나님을 믿을 리 없는 이방나라 애굽 왕의 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21절)
또 그 정도 되었으면 누구도 아닌 요시야 왕인데 하나님의 뜻을 물었어야 하거늘 이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전혀 없고 이상한 행동으로 일관한다.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22절)(아합왕 스탈)
결국 그렇게 싸움을 강행하다 옛날 아합왕을 쏘았던 그 화살 처럼 병사가 우연히 쐈을 화살에 맞고 중상을 입어 급거 귀국하나 돌아가신다. (23.24절)
선한 왕의 어이없는 죽음이다.
그 일련의 과정이 인간적인 시각으론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하긴 2600여년 전의 지구 반대편에서 장시간에 걸쳐 일어난 일을 어찌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으리요.
이 일 뿐만 아니라 실상 지금도 인간사 모든 일이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인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내 머리론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빈발하여 머리를 젓게 만든다.
왜 중국 직원들은 이 모양인지...
왜 매출은 뜻 대로 안 오르는지...
왜 가족들에게 안 좋은 일이 연속되는지...
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자들이 국회의원까지 되었는지...
왜 미국과 일본도 벌써 05년, 06년 제정되어 발효 중인 북한인권법이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9년 째 통과되고 있지 못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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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리고 그것이 새삼 너무나 당연한 것임은 내가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게 당연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절대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내게 부당한 것이 상대방에는 당연한 것이 되며,
그렇게 모두가 불완전한 자기 기준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하기에 세상은 어떤 원인 이전에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불공평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본적의 시각으로는 세상에서 답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며,
신본주의 접근만이 세상을 수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요시야 왕의 죽음도 머리를 갸웃거릴 일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으로 사는 것.
말씀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것.
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인도함에 순종하는 것.
거친 땅이지만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의의 호심경을 품고 하루하루 의미있는 전진을 하는 것.
오늘도 그것의 중요성과 가치를 마음에 새기며...
[기도]
주님! 이해할 수 없기에 하나님을 더욱 의뢰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뢰하기에 부딪는 모든 것이 이해되어지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알게 하시고 오늘 내가 내 자리에서 믿음으로 행해야 할 것을 바로 보게 하소서.
주어진 작은 일에 승리하게 하시고 마땅히 해야 할 이상의 의심과 염려를 벗어버리게 하소서.
[오늘-하루]
*오늘도 하나님표 안경으로 세상 보기!
*정확한 초점으로 시원하게 바라보는 따뜻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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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iah, however, would not turn away from him, but disguised himself to engage him in battle. He would not listen to what Neco had said at God's command but went to fight him on the plain of Megiddo. Archers shot King Josiah, and he told his officers, "Take me away; I am badly wounded."
#32422;西#20122;却不肯#31163;#24320;他,反而改了#35013;要和他作#25112;,不#21548;#20174; 神借尼哥所#35828;的#35805;;于是他去到米吉多平原和尼哥交#25112;。弓箭手射中了#32422;西#20122;王;王#23545;他的臣#20166;#35828;:“#20320;#20204;把我#24102;走#21543;,因#20026;我受了重#20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