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5:1~19
개까지 데리고 집나간 아내
자발적으로 10개 항목의 각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1항목이 공예배 사수와 양육받기였으며,
1항목이 들어 있음으로 다른 9가지 항목은 자연스레
별거 아닌것 처럼 되어졌습니다.
물론 그 때 당시에는 참기 어려운 금주와 세상친구 만나지 않기,
잡기금지, 등이 들어 있었지만~~~!!
내가 각서를 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희안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하는 것이 이제는
내 힘으로 되는 것이 갈수록 없어진다는 증거입니다.
09년 10월에 우리들교회를 등록하고 다음해 4월에 친한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패하고 어려울 때 일자리를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친구였습니다.
가슴이 아프다는 핑계로 장례기간 동안 지내며 술을 마시고 포커를
즐기며 음주 운전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마음이 괴로운 나는 신앙의 힘은 온데간데 없고 장례가 끝나고도
괴로워서 지속적으로 술을 마시고 세상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그런 문란한 생활에서 아들보낸 여파로 우울증이던 아내에게,
나는 집에서는 마시지 않던 술을 집에서 까지 마시며 아내가 핀잔하자
병을 던지고 누워있던 아내를 발로 건드렸습니다.
(아내는 찼다고 함) (나는 찼으면 죽었을 거라고 함)
폭력은 하지 않고 살았었기에 그 일로 예민하게 반응하여 딸과 개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공동체의 처방도 거절한 채 두 달여를 언니집에 있던 중
여러 집사님들의 조언으로 들어왔으며, 내가 각서 비슷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실은 악해진 나는 들어오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공동체 처방으로 일대일양육은 이미 받고 있었고 처방대로 신경정신과에도
다니던 중이라 악하게 마음먹은 생각과는 다르게 아내나 딸에게
일언반구도 못하고 주눅든 개마냥 지내며 1항목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이 후로도 많은 사연이 있었지만 1항목이 저에게는
잊지 못할 유월절이 되었고 힘들 때 수요예배에 가끔은 꾀가
나지만 공예배가 이어짐으로 지금까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날 10여년 전 교회 앞까지 가서 돌아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음을 볼 때 기복의 정점에 있던 제가 지금도 가끔 빠질 사유가
있을 때, 아내와 딸을 걱정하며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시발점이 되어서 주일예배에도 잘나오지 않던 딸이 청년부
목장까지 참여하고 있으며, 나에게는 쉽게 화를 내지 못하던
아내가 화도 너무 잘 내고 잘 삐지며 자유하게 행함으로 건강한
믿음의 가정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아내의 돌연 화냄에 가끔은 참기 힘들지만 잘 이겨내리라
다짐하고 움찔움찔 화가 올라올 때마다 소중한 아내와의 관계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며~~~
가정은 구원을 위해 맺어진 공동체임을 잊지 않고,
유전되지 않는 신앙이지만 대물림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내가 만들어준 유월절 (공예배)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며,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정결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