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4:1-13)
어리다고 무시할 것이 못됩니다.
1년간 교환교수로 미국에 살았던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가장 두려운 것이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6학년 딸을 찾습니다. ‘딸아, 전화왔다. 얼른 받아.’ 아빠도 엄마도 뒤로 숨습니다. 모두 박사인데도.....^^ 딸아이가 영어유치원을 다녀서인지, 영어를 곧 잘 했습니다. 그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공항 라운지에서 비행기 방송도, 샌디에고 불나서 아파트 피신할 때도.....
목장을 밤 12시 끝내고 치우면서, 아내와 딸과 식탁에서 목장이야기를 할 때가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 아쉬운 일, 잘못한 경우 등을 이야기 하다 보면, 딸아이의 처방에 눈이 둥그레집니다. 거의 평원지기 수준입니다. 자기 적용은 못해도 처방만은 수준급입니다....^^
2주전 예배의 설교에 등장한 중1 학생의 간증만 봐도 그렀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아빠에 대한 사랑과 간절함으로 모두를 울게하였습니다. 어른들 보다 낫습니다.
오히려 들리지 않는 것이 어른입니다. 들려도 쉽게 믿지 않는 것이 어른입니다. 믿어도 쉽게 까먹는 것이 어른입니다. 그래서 모든 왕들이 끝에 악을 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최근 당연히 될 줄 알았던 연구비 세건이 계속 떨어지니,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의 기도는 까먹고 대학원생 인건비만 걱정합니다. 이것저것 논문과 연구, 학회활동에 요즘 펑크가 나고 약간 문제가 생기니, 내가 너무 신경을 안썼나 하는 욕심이 올라옵니다. 아이들에게는 없을 법한 태양상, 아세라목상 ... 아직 내가 빻아야 할 것 들입니다.
적용> 주어진 연구환경에 순종하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