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기에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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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10.07
2007-10-07(주일) 사도행전 13:13-23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기에’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성령으로 한 마음 되었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돌변할 수 있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요한이 떠난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실만 간단히 기록된 것으로 보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민망하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돌아간 것이라 생각됩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의 개종 사건 이후에 바울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늘 먼저 나오던 바나바는 동행하는 사람들로 표현된 것으로 미루어
바나바가 리더로 출발한 선교팀의 내부에 변화가 생긴 듯한데
바울이 선교의 주인공으로 부상한 게 그 이유라면
성령이 떠난 요한에게 사단이 틈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꾹 참고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 동행하며
팀웍을 해치다가 크게 곪아 터지는 것보다는
솔직한 감정으로 돌아섬으로써 미리 정비할 기회를 주는 게
공동체를 위해서는 오히려 유익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을 감추고 인간을 속일 수는 있지만
성령을 속이며,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거룩한 사명을 수행할 수 없기에
번민 끝에 내린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관대히 보아준다 하여도
요한의 중도 포기는, 공동체나 요한 자신에게 큰 상처를 남긴 게 사실인 바
후일, 요한은 공동체에 끼친 피해에 대한 참회의 마음으로
일설, 그를 저자로 보는 마가복음의 집필에 정성을 다했을 지도 모릅니다.
나도 한 때 나를 살려준 말씀과 교회에서 마음이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포장마차 영업 초기, 주일 오후에 영업하려고 예배를 1부로 옮기고 목장도 빼먹다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 그곳에 충성을 다하다보니 주일성수까지 범하게 되었습니다.
2년 만에 회개하고 돌아와 양육에 참여하여 지금에 이르렀지만
직분 없이 보낸 양육의 시간 동안, 치졸한 자존심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는지...
그러나 말씀의 은혜가 쌓일수록 다스려야 할 죄와 불순한 마음도 많아짐을 봅니다.
양육을 통해 밝아진 영의 눈으로 원래 있던 내 죄가 보이는 것일 뿐인데
지금도 불뚝 거리는 완악한 마음은 주기적으로 나를 기롭힙니다.
얼마 전에도 사소한 일로 교회를 떠나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다가
나에게 돌아온 건 싸늘한 비웃음이었고 경솔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이 겪은 실패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나
인간의 의지만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돌이키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건 교만이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건 수치심이라 했습니다.
실패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게 겸손한 마음이고
성령의 권능으로 딛고 일어서는 게 그리스도인의 특권임을 깨닫는 주일 아침,
언제라도 일어설 수 있기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존감 강한 자녀 되기를 아버지께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