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0. 역대하 29:20-36
성전을 수리하고 성소를 성결케 한 뒤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며 예배를 회복하는 오늘, 다양한 직분들이 등장합니다. 왕(King), 귀인들(city officials), 제사장(priest), 레위사람들(the Levites), 왕의 선견자(King's seer), 선지자(the prophet), 회중(the assembly)...
왕은 귀인들과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에게 명령을 하고, 왕의 선견자와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명을 받아 전달하니, 명을 받은 이들은 번제를 드림과 동시에 노래하고 나팔 불며 악기를 울리고 다 엎드려 경배합니다.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 합니다.
모두가 하나 되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마치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몸으로 시행할 준비가 다 되어있었던 것도 같고, 명령하는 자 또한 힘과 권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함께 거들고 본을 보이려 뛰어들 자세가 되어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다양한 역할들이고 상하의 수직적인 체계이건만, 일치된 마음으로 자신의 역할을 넘치게 수행하기 때문에 비는 구석이 없고 서로의 부족을 채우면서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 조직체로 보여집니다. 내 맘을 그가 알고 그의 언행을 보니 진실된 마음이 알아져서 헌신이 절로 됩니다. 마음이 우러나서 감싸안아집니다.
히스기야왕이 귀인들과 드렸던 제물이 수송아지 일곱, 숫양 일곱, 어린양 일곱, 숫염소 일곱인데, 회중이 가져온 제물은 수소가 칠십, 숫양이 백, 어린양 이백, 따로 구별하여 드린 소 육백, 양 삼천... 하나님이 세운 리더의 본이 이렇게 파급효과가 크고 대단한 걸 봅니다.
이 과정에서 제사장이 부족하여 레위사람들이 일을 돕는데, 제사장들이 권위를 내세우며 ‘네가 감히... 월권이다 어쩌구...’하지 않습니다. 직분으로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능력으로는 이미 충분하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 목적인 이들에게는 하나도 질투꺼리가 아닌 것입니다.
어린이집의 한 교사가 생각납니다.
지난주에 그 교사는 어린이집으로 옥수수 한 푸대를 휴가지에서 부쳐와 모든 교직원들이 맛나게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동료들 생각이 났다고...
나이도 경력도 많으나 주임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능력 면에서도 열등감을 많이 갖고 있던 자였습니다.
원장인 제게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성심이 가득한 자로 보였지만, 외모로 취하는 이들에게는 참 무시당할 만한 습성이 많은 자였습니다.
작년에 7년차 되던 그 교사에게 학부모들의 오해와 동료교사의 모함으로 엄청난 위기가 닥쳤었는데... 억울하고 수치스러워 사라지고 싶었던 그 시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고 앞서서 해결해나가는 원장님(^^)과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었다고 여기며 위로하고 협력해준 동료교사들 덕분에 알을 깨고 탈바꿈을 하게 된 계기를 거쳤습니다.
그래서 그 후 표정이 달라지고 태도가 변했습니다. 이제는 그냥 느껴집니다, 누구보다 어린이집을 고마워하는 자요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라고...
히스기야건 레위인 중 한 사람이건 아니 회중의 한 사람이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이 있는 곳. 그곳이 가정이건 직장이건 사회이건... 변합니다. 변하는 것이 마땅하구요.
제가 있는 곳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 굽혀 생활예배 드리는 곳이 되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