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이거든/행12:1-171.
저는 민주화 운동을 한 것도 아니면서 경찰서 보호실이나
유치장 신세를 몇 번씩 지은 적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일로 기억되는 것은 88년도에 노량진 경찰서 유치장에서
이틀 밤을 자고 송치를 기다릴 때 였는데
경찰 폭행 및 공무집행 방어로 엮였기 때문에
만약 오늘밤에 못 나가면 다음 재판 때 까지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지도 모르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한 번만 봐 주시면 진짜 싸움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옵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울 주님께서 꼭 의인의 기도만 들어 주신 게 아니질 않습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그리고 군에 있을 땐 유치장 근무자로 근무를 섰습니다.
군단이나 사단 내에 있는 감옥은 대계 헌병부대 안에 있는데
외(外)초와 내(內)초가 매일 시시각각 상황실로 이상 유무 보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지 200평에 건평100평 남짓한 유치장 안에 들어서면
ㄷ자형으로 쇠창살문들이 있고 미결수와 기결수를 구분하여 관리를 합니다.
사회나 군대나 미결수에 비해 기결수를 대우해 주는 것은 영창의 관례입니다.
대우라고 해봤자 큰 혜택이 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근무자가 미결수 앞으로
3번 지나갈 때 기결 수 앞으로는 1번 만 지나가는 정도랍니다.
영창은 언제나 크레졸과 암모니아 냄세로 진동했는데
수감자나 근무자인 저한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제대 말년까지 영창근무를 자처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외(外)초의 충성!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수사계장이 병사 한 명을 인솔해 영창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00사단 32중대 아무개, 대학1년 휴학하고 왔답니다.
군대 가서 사람 돼서 오라니까 애인이 변심했다고 탈영한 일등병입니다.
총기탈영을 안했으니 6개월만 살고 나오면 됩니다.
자알 했습니다.
대가리 박아 실시,
원위치,
박아,
2단계 얼 차래가 끝나고 마지막 마무리로 어머니 은혜 를 부르는데
~진자리 마른자리~를 지나갈 때 원산폭격상태에서 흘린 눈물이
마룻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맙니다.
겨울바람이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만큼 영창 안에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전체 노래1발 장진
발사,
울지는 않으련다.
아무리 서러워도
죄를 졌기 때문에 큰 죄를 졌기 때문에
울지는 않으련다 형(刑)을 받더라도
언젠가 사회에 나갈 날 있어
끝까지 견디며 울지는 않으련다.
2.
안디옥 교회의 기쁜 소식 다음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소식이 이어집니다.
이방인 선교가 성공적일 때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받아
야고보는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야고보 사도가 순교당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를
생각해 봤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은 이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이고
울 주님 편에서는 성도가 믿음을 지킬 때(순교) 교회가 더욱 견고해 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베드로 사도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감옥에서 코를 골며 잤던 것 같습니다.
(와~베드로 많이 컸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울 주님께서 교회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 철통같은 옥문을 탈출하게 하셨답니다.
아니, 왜 누구는 순교하고 누군 구출해줍니까,
야고보의 죽음을 다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성도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고난이라면
나도 기꺼이 그 죽음에 동참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옵소서.
그러나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사오니
저를 향한 주님의 뜻과 주권을 받아들이고, 신뢰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기도하기는 저 공산권과 무슬림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과 성도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2007.10.4.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