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본전치기 인생]
요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요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지 십육 년이라 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_(개역개정) 역대하 27:8,9
[묵상]
부친 웃시야의 뒤를 이어 남유다의 11대 왕이 된 요담의 통치를 짧게 기록하고 있다.
기록된 내용을 볼 때 재위 16년 기간 동안 대체로 '무난'하게 역할을 감당하였음을 볼 수 있다.
부친 웃시야가 잘 행하다가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을 대신해 분향하려던 것 때문에 말년에 당한 고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지라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다.(2절)
이 말의 의미는 아예 성전출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부친이 범한 것 처럼 성전에서 자신이 해야 할 것 이상의 분수를 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렇게 왕은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2절a),
여호와 앞에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 졌으나(6절),
정작,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다. (2절b)
열왕기에선 이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묘사한다.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후략)'(왕하 15:34,35)
이러한 백성들의 분위기와 토대가 12대 왕 아하스의 우상숭배와 악정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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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백성이 따로 논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신은 분수를 지키고 선방을 하여 편안한 말년을 보냈지만 백성(자녀, 직원, 성도...)들은 여전한 '부패'가운데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영향력이 자신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흐르지 않은 것이다.
요담 왕은 왕으로서의 소임과 신앙인으로서의 분수는 지켰는지 모르지만 '영향력있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 날도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 된 우리 가운데 그저 '분수 만을 겨우 지키는 그리스도인'...
값없이 얻은 구원을 다시 값없이 되돌리지 않고 자신에게만 고여 있는 '나약한 그리스도인'...
성전 뜰은 밟는데 성전 문턱을 넘지 않는 '주변인 그리스도인'...
수박을 먹되 알멩이를 버리고 껍데기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 '제 맛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살해 당하고, 몹쓸 병에 걸려 죽었던 선대의 몇몇 왕들과는 달리 별 탈없이 죽어 조상들과 함께 다윗성에 누운 요담왕의 선방에 대한 평가는 결국 '가까스로 본전치기'인 셈이다.
'가까스로 본전치기'인 생으로 삶을 마감하고 싶진 않다.
[기도]
주님! 주님 허락하신 단 한번 뿐인 육체로서의 시간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힘차게 흐르길 소망합니다.
이 일에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시고 지구력을 허락하소서.
[오늘-하루]
*오늘도 가까스로 본전치기하는 하루가 아닌,
*풍성하게 복음의 수익을 남기는 땡잡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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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was twenty-five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in Jerusalem sixteen years. Jotham rested with his fathers and was buried in the City of David. And Ahaz his son succeeded him as king. 他登基的#26102;候是二十五#23681;;他在耶路撒冷作王共十六年。#32422;坦和他的列祖同睡,埋葬在大#21355;城里;他的#20799;子#20122;哈斯接#32493;他作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