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25:1-16)
‘나 스스로에게 솔직하자.’ 제 좌우명이었습니다.
역대기 왕의 인생평가 기준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2)’입니다.
‘솔직’과 ‘정직’. 무지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거짓이나 숨김없이 곧고 바른’ 기준이 세상사람들도 아니고, 자식들도 아니고, 더더욱 ‘나 스스로’는 아니고, 오로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라고 합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더더군다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라(2)’ 하십니다.
오늘도 당골 어머니가 딸환자를 데리고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유난히 제책상까지 가까이 다가오시더니.... 역시나 진학에 도움을 얻기 위해 ‘청각장애진단’을 올려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합니다. 최고등급 2급으로... 그런데 작년기록을 보니 장애등급의 경계선상에 있어서 그렇게 높은 등급은 불가능하고, 최근에 법도 바뀌어서 병원에서는 검사만 하고, 등급결정은 정부에서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물었더니, 아뿔싸 5년전 법이 바뀌기전 제가 등급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선한 일이라는 핑계로 스스로 기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자’는 기준으로...
스스로 기분이 좋을 때는 “간”이라고 빼주었고, 스스로 기분이 안좋으면 너~무나도 솔직하게 “욱~~”을 표현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저보고 자주 그랬습니다. ‘기복’을 줄이라고....
돈주고 산 나의 형제 이스라엘 용병(6)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여호와 보시기에는 선하지 않은가 봅니다. ‘인맥용병’ ‘돈용병’ ‘권력용병’ ... 너무나도 내주변에 많은 유혹들인데... 역시나 분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매일 나의 일 앞에서 여호와의 기준을 물어가기를 소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은 백 달란트를 손해보기 이전에 먼저 묻고 이스라엘 용병을 안사는 적용을 먼저하기를 소원합니다. '여호와의 기준' 큐티말씀의 소중함을 또 한번 느낍니다.
적용> 오늘 학회 이사회에서 있을 여러 결정 사항에 나의 기준을 앞세우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