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25;1-16
위기는 회개하고 순종할 수있는 기회이지만 부와 편안은 죄와 타락의 기회가 됩니다.
불행하게 끝난 요아스를 대신하여 아마샤가 왕위에 오르지만 여호야다 없는 요아스에게 무엇을 배웠을까? 요아스의 죽음 앞에서 아마샤는 하나님을 두려워는 하였겠지만 징벌이 두려운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행하지만 온전하게 전심으로 행하지는 못했던 신앙인데, 이것도 나라가 불안하니 유지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전심이 없는 정직함도 기뻐하시고 나라를 굳게 세워주시고 율법에 따라 아비의 원수도 갚게 해주십니다.
내가 전심으로 온맘을 다해 하나님 앞에 행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너무 죄송하고 어쩔줄 모르겠습니다. 내 속에 차돌같은 욕심이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 잘먹고 더 잘살려는 욕심이 나를 병들게 하는 것같습니다.
이때에 내가 육적으로 굳게 선다 한들, 담력을 내어 이긴다 한들, 나는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다시 힘을 구할 것이고 우상 앞에서 다시 머리를 숙일 텐데,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내가 값을 지불하였다 할지라도, 나의 희생과 노력이 들어갔다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돌려주고 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의지 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대에 내가 실망을 주게 될지라도, 그래서 저들이 나에게 해를 가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은 내가 포기할 줄 알아야합니다.
나는 안되는데 아마샤는 따라합니다.
이기도록 돕는 것과 패하게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믿고 행해야 일원론인데...
온전치 못한 믿음이지만 순종함으로 담력을 내어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 승리 때문에 돌려보낸 자들의 약탈을 간과하고, 이만명을 죽인 것에 도취되어 삼천명이 죽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못했습니다. 너무 큰승리는 저주일수 있습니다. 나의 신앙보다 큰 부귀영화는 조심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시는 작은 경고들을 듣지 못합니다. 온전하지 못한 믿음에 재물과 명예와 행복은 나에게 칼이 되어 돌아 올수 있다는 것을 내가 체험했습니다. 그때 내가 억지로라도 정직히 주님앞에 행하였다면 나는 아슬아슬하게 유지 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잘되면 사람은 억지로하던 순종마저 벗어버리고 나의 악한대로 하게됩니다.
나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던 우상앞에 절하고 세상의 쾌락과 짝하였으며, 잘 안되는 일에는 예배중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이혼이 나에게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 떨어져 죽을 길밖에 없는 자였고, 하나님의 계획을 버리시는 이혼이라는 마지막 방법이 아니면 돌아설 줄 모르는 자였던 것입니다. 이혼 밖에 나를 돌이킬 방법이 없었던 나의 지난 모습들이 슬프고, 또 이러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아프신 마음을 조금씩 알고 갑니다. 나에게 조금 남아있던 억지로하는 정직함도 버리고 나의 악한 대로 행하고 주의 말씀을 무시했던 나를, 주님은 멸하기로 작정하지 않으시려고 베푸신 주님의 은혜임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나보다 악한 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샤보다 못한 나를 살려주시고
공동체에서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포기하지 말고 욕심 밀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