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을 보면 도무지 요아스의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헷갈립니다.
재위 20년이 넘도록 하나님께 순종하고 또 앞장서서 성전을 보수했던 자가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급 변질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용을 보니 왕권을 지탱하던 구심점이 없어지자 사람들을 의지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평생 아버지처럼 믿고 따르던 사람이 사라지자 요아스는 심한 불안감에 휩싸인 것 같습니다.
산에 오르고자 할 때 안내자를 따라 산 입구에 다다르면 직접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산 입구에 서서 산에 여러번 오른 사람들이 산위에서의 경치를 실감나게 묘사하는 이야기만 들으며
직접 산에 올라가본 적도 없고, 올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산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실감나게 똑같이 묘사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수도 있지만
직접 산을 올라가보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직접 산을 느끼고, 만지고, 냄새맡으며 경험하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반쪽 신앙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요아스는 하나님께서 여호야다라는 든든한 안내자를 붙여주셨지만
직접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결국 성전을 짓고 여호야다의 생전에 선한 통치를 한 것도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는데 '그 방법'이 가장 좋기 때문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우상 섬기듯이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어제 주일 말씀도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결국 반쪽신앙은 믿음이 아니고 고도의 속임수이며 가장 무서운 함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여호야다가 죽기 전에는 요아스의 신앙이 반쪽신앙이었음을 아무도 알지 못했으니
오직 하나님만이 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을 통해 요아스 안에 있는 아각을 드러내셨던 것 같습니다.
외부의 성전은 건축했으나 자신의 영혼속에서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요아스,
바알 신당을 부수고 제단과 형상들을 깨뜨렸으나
결국 요아스는 신당을 부순것도, 성전을 건축한 것도, 다시 아세라 목상을 섬긴 것도
자신의 왕권을 굳건히 하기 위해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지,
누가 가장 힘이 센지 힘겨루기를 한 것이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요아스를 보면서 반쪽 믿음으로 열심을 내었던 저의 모습을 봅니다.
반쪽 신앙일 바에야 아예 전부 부수어 네가 나를 버렸으며 나도 너를 버렸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이심을 오늘 아침 다시 묵상해봅니다.
결국 반쪽 신앙으로 전무 무너져 황폐한 지점을 통과해야 했던 저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안내자가 없어지면 다시 산을 잃어버리는 믿음이 아니라
안내자를 통해 길을 묻고 그리고 땀흘리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직접 산을 올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되며 또 내가 어디있는지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일학교를 다닌다 해서,
엄마라는 안내자가 있다고 해서, 말씀을 외우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당연히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두려움으로 배웁니다.
진정한 안내자는 아들이 직접 산을 오르기까지 도와주며
스스로 땀흘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모든 과정을 기도로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 제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도 내일 다시 반쪽신앙이 될 수 있음을 두려움으로 기억하며
나도 모르게 주님을 버리지 않도록 오늘도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