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08. 10일 3-8목장 카톡방에 올린 큐티 나눔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정치적 나눔이 아닌 저의 죄와 치열하게 싸운 삶을 나눈 나눔으로 읽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제 안에서 진멸해야 할 아달랴와 바알 신당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인본주의의 잔재입니다.7년동안 요아스가 왕으로 등극하지 못했듯이, 주님을 만나고도 10년 가까이 완전히 제하여지지 않은 인본주의 때문에아직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있음을 주님께 회개합니다. 왜 그리고 어디서 이런 인본주의적 사고가 오게 되었는가? 그 원인을 살피며 묵상해 봅니다
초등학교 5,6 학년 때, 저에게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주었던 선생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가족이 전교조에 좌파 성향적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은 참 의롭고 훌륭하셨습니다. 게다가 애정결핍이었던 저를 사랑해주시고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초등학생인 저희들에게 이 왜곡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작은 연못'이나 '아침 이슬'과 같은 주옥같은 수십개의 민중가요를 알려 주시고, 저희가 모르는 광주항쟁이나 4.19 혁명과 같은 어두운 정치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 후로 저에게는 자연스럽게 좌파편향적 가치관이 옳은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제가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정치적 관점 또한 이에 근거한 가치관으로 더욱 확고해져 갔습니다. 저와 비슷한 가치관의 사람을 만나면 왠지 모를 피끓는 뜨거운 동지애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우리편 아니면 적 이란 개념도 아마도 이때 생긴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럽게 세상은 왜곡되었고 부조리하다는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의 문제에 금이 가게 되었고 점점 저의 마음은 인본주의적 생각으로 메말라져갔습니다. 이런 좌편향적 사고는 주님을 만나고도 한동안 지속되다가 우리들 교회에 와서 구속사가 깨달아질 때까지 계속되다가 제가 인생을 돌아왔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내면에 쓴 뿌리도 있었고, 강한 인본주의적 성향에, 믿음이 없었기에 영성도 메말라 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런 좌파적 성향은 점점 더를 넘어서 100% 맞다는 확신이 들며 절대로 깨어질 수 없는 바알 신당이요 아달랴였으며 우리들 교회에 와서 말씀으로 가치관이 변하면서 예수님 이외에는 저의 이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보적 성향은 결국 저로하여금 모든 것을 인본주의적 잣대로 평가하게 하였습니다. 무엇이든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정(正) 아니면 반(反), 아군 아니면 적군, 깨끗함 아니면 더러움,착한사람 아니면 나쁜사람과 같은 극단주의를 표방하게 만들었고, 제 안의 분노의 교묘한 탈출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100% 죄인이란 사실은 감추고 타인의 죄에 대한 지적만을 일삼게 되며 모든 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큐티 본문중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악한 왕을 세우셨다는 말씀이 저의 뇌를 망치로 내려 치는 것 같았습니다. '아! 이것이 구속사구나! 이 세상 어떤 악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만일 독재자 폭군도 하나님이 뜻이 있어 세우셨다면?'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니 사회 비판이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조심스러워졌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폭군에게 "당신은 폭군이오. 당장 돌이키시오!!! "하고 말하는 의로운 사람보다, 폭군 밑에서 압제를 당하며 그 폭군이 예수 믿도록 수십년 수백년을 기도하는 사람이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때부터 정치적 성향도 이데올로기도 철학도 결국 예수 없으면 의미없고 악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생명인데, 이 생명인 복음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훼손된다면 안된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면서 사회 비판을 안하는 적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 안에 있는 아달랴를 그리고 바알 산당을 매일 매일 때려 부수고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신문기사나 정치란을 보면 구태정치, 수구보수를 보면 또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생겼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럽게 비판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나의 옳고 그름과 하나님의 옳고 그름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하나님께 "하나님 선하게 인도해 주세요'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 걍팍하고 메말랐던 저의 감정이 살아나게 되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기적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청년때 저의 모습을 아는 아내는 이것이 정말 기적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한 의로운 대통령의 자살사건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식음을 전폐했을 정도로 강렬한 진보주의자가 바로 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저는 아직도 제 사고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옳고 그름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잔소리하고, 아직도 모든 문제를 구원의 문제로 보지 못해서 제 감정이 춤출때가 있습니다. 내 안의 아달랴는 몰아냈지만 성전 보수를 아직 완전히 끝내지 못했기에 인본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이젠 또 어쩔때는 보수 편향적 사고로 약간 기울어 집니다. 저는 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음과 구원만이 정답입니다. 친구들은 가끔 저에게 농담으로 '어용'이 되었느니, ' 변절자'니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변절자라면 변절자 맞습니다. 예수님이 저를 어용으로 쓰신다면 그것도 맞을것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퇴근후 광화문으로 향하는 친구를 보며 광화문 그만가고 "교회에 오면 안되겠니?'하고 묻는 저의 마음은 정말 성령님이 심히 탄식을 합니다. 저는 지금 정치적 나눔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조심스럽지만 저의 얘기, 제 안의 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 안의 인본주의의 잔재로 남아있는 산당이 완전히 멸하여 질 때까지 끊임없이 죽이고 철거하겠습니다.
적용 : 제 기준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