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화요일
제목: 교제
역대하 20:20-37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말씀 앞으로 나간다. (20)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20) 다시 말씀하신다. 신뢰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찬송이다. 감사다. 하나님을 노래함이다.(21) 천지의 고요함 가운데, 내 마음에 요동함이 없고 평강이다. 그게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밀린 원격 연수를 듣게 하심도 탈취물이고, 아들이 노느라 피곤하여 조는 것을 보고 얼른 자거라~ 하게 하심도 탈취물이다. 그런데 그건 오늘로 그칠 게 아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져 하나님을 송축하는 브라가 골짜기가 될 것이다. (26) 모두가 즐거워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사방에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요?” 이해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일들, 꼬여가는 인간관계에 나는 방방 뛰었다. 그래도 다행이고 그래도 감사고 그래도 하나님의 후대하심은 그게 하나님 목전에서, 하나님 면전에서였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서 엎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러고 나면 잔잔한 평강이었다.
나는 그때에도 제대로 적용하고 실천하지 못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신가? 하며 적용하고 매듭을 풀려고 하면 더 꼬여가는 관계, 아! 내가 여기서 잠잠히 있을 수밖에 없구나! 잠잠하면 또 더 꼬여가는 관계, 그래서 거기서의 내 해석은 내 수준에서의 적용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었다. 꼬이면 꼬인대로, 그 환경에 나를 내놓는 것, 단절된 섬에 갇혀 지내며 내 한계를 보는 것.... 그러나 여전히 내 안에는 그 환경이 나보다 옳도다의 고백보다는 나의 억울함과 나의 슬픔과 나의 서러움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내 심정을 알고 계시고 그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라는 든든함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버릴지라도, 나를 욕할지라도 내 하나님, 내 어버지는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품으시고 나를 다독이시고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기에 그 품을 찾았다.
3년이 지나, 그걸 꺼내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여겨져 다시 다뤄가며 내 안에 얼음덩이들을 눈물로 쏟으며 화해를 청할 때만해도 하나님이 나를 향한 훈련이셨음에 대한 수긍과 감사는 되었지만, 내게는 몽둥이 역할을 했던 그 환경에 대해 100% 그가 나보다 옳도다!의 고백이 안 되고 99% 그가 나보다 옳도다!였다.
이제 다시 그 장면이 떠올라지는 지금, 지난 수요 예배때 김석규 초원지기님을 통해 들려주신 말씀으로 내 존재 자체가 갈등의 원인일 수 있음에 100% 아멘이 된다. 내게 들려지고 내게 처해진 어떤 환경과 상황도 100% 하나님의 옳으심을 뒤늦게야 인정이 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였으나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여서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한 것은(33) 내 삶의 결론이고 성경 저자인 하나님의 평가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라면 잘 되고 승리해야 하는 산당, 훈련의 끝은 형통의 삶이어야 하는 산당, 하나님과 사람에게 함께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산당, 아들들 신앙이 바르다면 맘 잡고 성실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산당.... 여전히 내 안에 철거하지 않은 산당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구원을 막는 자가 나임이 고백되어진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게 너무도 많은 여호사밧일지라도, 심히 악을 행하는 아하시야와 교제하고 연합하였다. (35) 그럼에도 하나님이 선하신 것이 지은 것을 파하시고 부숴뜨려서 다시스로 가고자 하는 도모를 막으심이다. (37) 내가 도모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날 때 하나님이 막으시고 방해하시고 부숴뜨려주실 하나님의 주권을 보게 하시니 감사다. 하나님이 내 안에 구원을 위해 환경을 들어 들려주시고 막아주시고 훈련해주심에 감사하고 감사한다. 하나님이 끝까지 나와의 교제를 원하심에 감사하다.
하나님, 내 안에 산당을 부숴뜨리고자 말씀과 환경으로 들려주시고 악한 교제와 악한 일의 도모를 막아주심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훈련을 잘 견딜 수 있는 영안이 열려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어지게 하옵소서.
♡ 기도함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회개를 시작하겠습니다.
사건마다 내 죄보며, 적용거리를 찾아 적용하고 실천하겠습니다.
아들을 더 안아주며 격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