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9:4-11)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재판관의 역할을 할 일이 꽤 생겼습니다.
직장에서 3년전에 과의 전공의들이 다툼이 있으면서, 후배 전공의가 선배 전공의가 보기 싫다고 사표를 쓴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화해를 유도하고 타협을 시도해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기억해 보면, 이 때 과장으로 있으면서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하며 일의 해결을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밉다는 선배 전공의도 결국 병원을 떠나야만 되는 상황이 생기면서 제자 둘을 모두 잃은 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속사를 배우면서 다행히 사표쓴 전공의를 설득할 마음을 주셔서 금년에 복직을 시켜주었습니다.
교회에서 얼마전 두 집사님이 동업을 하면서 생긴 오해와 갈등을 초원지기로서 해결해 줄 일이 있었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우리들교회에서 배운대로 치우침 없이 (7), 구속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결국 한사람을 전도하지 못할망정, 이런 일로 믿음의 형제는 잃지 말아야 되지 않겠냐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양보하자고 했습니다. 두 분이 순종하시고 화해하셔서 감사했습니다.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6)’ 믿는 자로서 재판관의 가치기준을 오늘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말고, 한사람을 살리기 위한 구속사의 입장에 서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는 것(10)이라 하십니다.
그런데 제3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재판하는 것은 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나의 이해관계가 얽힌 재판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치 않고 상대방도 구원하고 나도 구하기 위해,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양보하며 죽어갈 수 있을까? 재판관의 자리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 가치관을 먼저 배우고 나에게 먼저 적용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적용> 판단할 일이 있을 때 먼저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묻겠습니다. 우선 고3 딸의 진로 결정에도 적용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