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오늘 본문은 마치 스토리북 이야기같습니다.
몇천년 전에 쓰인 성경이 마치 오늘날 상황극을 보는 것 처럼 대화조차 드라마 대사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다시 보니 이상한 것들이 많습니다.
우선 아합은 어차피 미가야 말을 듣지 않을 거면서 왜 물어보았을까.
아합은 미가야가 좋게 이야기 해도 화내고 진실을 말해도 화냅니다.
아합은 15절에서 미가야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줄 어떻게 알고 다시 이야기하라 했을까.
미가야는 13절에서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말하리라
해놓고 멀쩡하게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14절에 합니다.
그리고는 왜 또 16절과 19절에 하나님께서 아합을 속이려하셨던 것을 폭로하였을까.
하나님은 악한 왕 아합에게 선지자를 보내시어 네가 악하니 정녕 죽으리라 하고 죽이시면 될 것을
무엇이 천상회의까지 하시면서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서 꾀어서 죽게 만드실까. 복잡하게.
본문에 보니 오늘 미가야도 아사왕의 선견자 하나니처럼 괘씸죄에 걸렸습니다.
시드기야의 말(23)로 미루어 아합은 미가야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전쟁도 할 것인데 다른 선지자들이 다 동의했는데 하물며 여호사밧도 동의했는데
미가야가 또 아합에게 좋지 않은 예언을 할 터이니 이번에 본때를 보여주리라 하고
굳이 미가야를 불러서는 "내가 이기고 와서 네 말이 다 틀렸음을 보여주마,,, 괘씸한 것!" 한 것 같습니다.
미가야는 왜 또 이랬다 저랬다 말했을까요.
제 생각에 미가야는 아합이 무슨 말을 하던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천상의 비밀회의를 폭로하여도 아합에게 그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아합에게 거짓말과 진실을 동시에 던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을 그냥 병으로 치시면 될 것을 굳이 전쟁을 하게 해서 죽게 하실까요.
어쩌면 하나님은 악한 왕 아합에게는 자신의 궁에서 맞는 존엄사도 허락하지 않으신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끝까지 아합에게 선택을 열어놓으셨던 것 같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끝까지 놓지 않았던 자신의 욕심과 허영과 오만에서 비롯된 선택들에 의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걸어간 악한 자의 경로를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합으로 하여금 끝까지 살 것 같고
이것만 넘기면 다 잘될 것 같은 착각으로 잘못된 길을 내달려 가도록 내버려 두신 것 같습니다.
또하나 사실은 이 모든 장면 가운데 있으면서 한줄도 나오지 않는 여호사밧도 이상합니다.
이 장면에서 여호사밧은 비겁한 침묵자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합의 모습은 참 이상하지만 사실 저에게는 낯설지가 않습니다.
어찌보면 말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입니다.
저혼자 생각하고 저혼자 결정하면서 그것이 옳다고 이미 확신해 놓고서는
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 누구 말이 맞나 보자,, 하며 씩씩댑니다.
말씀도 안들으면서 그나마 머릿속에 들어 있던 말씀에도 순종하지 않았던 저는
오늘 본문의 아합과 꼭 같았습니다.
신분은 이스라엘이었으나 삶은 이방인이었던 아합,
신분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이지만 삶은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저,
오늘 저의 질문과 답들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이런 묵상들을 하며
오늘도 저자신을 다시 봅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앞에 반성문을 쓰며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제안의 아합이 있음을 생각합니다.
주님, 제 안의 아합을 말씀으로 멀리 멀리 멀리 #51922;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