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여호사밧이 400명의 선지자에게 묻고 나서 또 미가야에게 물어보자 합니다.
아마 여호사밧은 싸우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스스로 의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돈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다보니 선지자들이 안된다하면 빠져 나오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는다 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절차는 지켰지만 뭔가 이상하고 결국 결과와 상관없이 이 일은 여호사밧의 한계를 드러내줍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은 믿음 좋은 여호사밧이 아합가문과 혼인할 때 고민을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본문에는 이에 관한 장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묻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고 형제와 싸우지 말라 했으니 정략결혼을 통해 전쟁을 끝내는 것이
분명 하나님의 뜻와 합치한다고 스스로 판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4년 제가 결혼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지금의 평원님이신 목자님께 남편을 소개했습니다. 남편은 수요예배인가 주일예배도 왔었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며 구원의 확신도 있다 말로 했습니다. 뻥~ 이었습니다.
당시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불신결혼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뭔가 찜찜했으나 상황의 필연성을 보며 이건 하나님의 '뜻일꺼야' 결론을 내렸습니다.
평원님도 아주, 아주 강하게 반대하시지는 않고 그냥 한번 더 생각해보라만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동의라고 제맘대로 생각하고 이제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다시 묻지 않았습니다.
몇년 후 우연히 담임목사님을 만났는데 저더러
" 내가 그 때 그 결혼하지 말라고 했잖아~~" ... 충격,,, 엥?
평원님이 분명 저에게 어떤 형태로든 목사님 뜻을 전달하셨을 것인데
저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본문의 여호사밧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뭔가 찜찜해서 결혼을 미루겠다는 저의 말 한마디에 온통 들고 일어나는 가족들을 이기지 못해
상황에 떠밀려 사실은 확신이 없는 결혼을 했더랬습니다.
40이 넘은 딸을 총각에게 시집보내는 일은 저의 부모님에게 일생의 과업이었습니다.
어려움은 내가 이길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이려니 생각했었습니다.
선지자에게 물으면 뭐합니까.
이미 제 마음이 오답이었고 그 때는 어떤 결정도 오답이었을 것을,,,,
결국 결혼 직후 지금까지 전쟁입니다.
중간에 정말 이제는 끝이다라고 생각한 적도 여러번이었습니다.
내가 참았다고 한 것이 돌아보면 정말 인간적으로 미련하게 육적으로 참은 것들이었으니
육적 전쟁에서 저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저자신이 붕괴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이 들리는 은혜를 회복해 주셨으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남편이 구원을 받으면 전쟁이 그칠까 생각해봅니다.
이제는 그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원받은 형제끼리도 불순종하여 사단에게 넘어가면 얼마든지 전쟁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원인은 남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저에게 있는 것이니까요..
싸우지도 동맹도 하지 말라 하였는데
스스로 엮여서는 저사람때문에 내 인생이 힘들다 하였으니 결국 그 원인은 저 자신에게 있습니다.
저의 오답은 바로 저에 대한 하나님의 정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저의 감정과 느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게 적용되어 나타난 저의 삶의 이야기속에 있었습니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만 하며 공부만 하던 학생으로서 읽었던 재미있었던 성경책은
이제는 저와 이웃의 삶을 비추어주는 해석서로서 하루하루 저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아사와 여호사밧의 잘못들을 보며, 죄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이제 보입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을 좀 더 알면 남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좀 더 잘 알 수 있겠지요.
그래서 불순종하며 치루었던 육적 전쟁을
이제 순종하며 치루는 영적전쟁으로 바꾸어나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