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5:1~19
어제 주일 새벽에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준비한대로 되지 않고 자꾸 버벅거리고 횡설수설하는가 하면,
주일이라 10명 안팍의 지체들만 있는데도 왜 또 그렇게 떨리는지..
말씀을 마친 후,
저 같은 자를 세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 보다,
이렇게 횡설수설한 것을 지체들이 들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걱정하는 명분은,
나 개인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면 횡설수설해도 괜찮은데,
우리들교회 평원지기로써 교회에 누를 끼칠까봐였습니다.
그래서 녹음하신 목사님께,
기도 시간이 끝난 후 다시 녹음하면 안되겠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목사님께서,
부드럽게 거절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일 말씀을 통해,
나의 큰 구원을 막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녹음하려던 의도는,
교회에 누를 끼칠까봐가 아닌, 결국 제 이름을 위해서였습니다.
한 마디로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거였습니다.
말로는 말씀을 가르치거나 전하는 것이 아닌,
평신도로써 하나님앞에 나의 삶을 고백하고 그것을 지체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하면서,
제 속 마음은 설교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늘 저를 피곤케하는 자는 바로 접니다.
제게 죄책감을 주는 자도 바로 접니다.
완고한 율법주의자도 바로 접니다.
이렇듯 저의 우상은,
다른 그 어떤 것이 아닌 접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취가 나는 존재인 것을 알면서도,
어느새 저를 세우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심이 앞서니,
오늘도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크신 사랑을 베풀어 주시길..구합니다.
그래서 아사왕이 우상을 찍어내고, 없애는 오늘,
저도 부끄럽지만 이렇게 저를 찍어냅니다.
아사라는 뜻은 “치료”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치료하고, 백성들을 치료하는 길은,
이렇게 자기 우상을 찍어내고 없애는 것임을 묵상합니다.
있어야 할 참 신과, 제사장과, 말씀이 없으면,
없어야 할 우상과 요란과 피차 상처를 주는 것만 그득함을 묵상합니다.
아세라를 섬기며 아들의 풍요와 복을 빌어줬을 어머니의 위를 폐하는 것을 묵상하며,
참 효자는 엄마의 우상을 없애 주느라 수고하는 아들임을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