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1:1-23)
똥배짱이냐? 진정한 용기냐? 아리송 합니다. 40만 아비야가 감히 80만 적군앞에서 연설을 하며 희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왜 이 말이 나왔는지 모르겟습니다. 겁쟁이, 배신자도 아니고 ‘난봉꾼, 잡배(7)’가 뭡니까? 귀가 번쩍입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51922;아내고 금송아지를 섬겼다는 대목(8,9)에서도 철렁합니다. 내머리 작전으로 앞뒤로 우겨싸는 모습(13)도 똑같습니다. 난봉꾼 잡배(?)의 젊은 시절, 교회도 안가고, 세상인정 금송아지를 위해 또 편입해 면허증 두 개로 승리해 보려는 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전쟁의 끝은 처참합니다. 80만중에 50만이 죽었고, 여로보암도 죽었습니다. 여호와의 간섭이십니다. 그래도 30만이 살았으니... 지금 제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속 승리를 위해 병원에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자꾸만 주여지는 것에 끌려가는 것이 있어 내려놓지 못합니다. 내 안의 여로보암이 온전히 죽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비야도 아내 열넷을 거느린 것으로 보아 피장파장 난봉꾼인데, 어찌 저런 똥배짱이 있었을까? 아마도, 여호와 앞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고 계명을 지켰다(11)는 떳떳함이 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적용> 매일 말씀묵상으로 병원의 여러 일들을 분별하고, 아랫사람에게 일들을 잘 나누고, 그들을 키워가며 갈 수 있도록 휴가 1주 동안 계획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