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성경을 읽다가 진도가 안나간는 곳이 열왕기, 역대하입니다.
지루한 왕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맨날 순종하여서 복을 받고 우상을 섬겨서 벌을 받습니다.
무서운 하나님,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보다가 신약에서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니
전에는 구약보다 신약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왜 그렇게 순종을 못했을까.
열왕기에 보면 여로보암도 아히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궁금했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우상을 섬겼을까..
만일 이 시대에 하나님이 구약에서처럼 특정 사건을 가지고 꿈과 예언으로 나타나신다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돌아오지 않을까,, 왜 그렇게 안하실까...
오늘 본문에 보니 북왕국에서는 수송아지 한마리와 숫양 일곱마리를 가져오면 누구든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총 여덟마리만 가져오면 '받고자 하는 자마다..' 다 제사장이 되어다 했으나
다시보니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에 미국에서 사막지대에서 운전을 오래동안 했었는데
물을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르고 몸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으나
당시 이스라엘은 먹고 살기 힘든 시대, 끊임 없이 생존을 위해 버둥거려야 했을 것인데
흠 없는 동물을 제물로 드린 다는 것은, 절기를 지켜 제사를 드린 다는 것은
'힘든 일', '힘든 일상' 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여로보암은 그저 금송아지가 '가장 귀한' 것으로 생각되었을 수 있습니다.
양 한마리와 금송아지,, 비교될 수 없는 시장가치의 차이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전심으로 찾지 않고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의 삶으로 내려오면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살았고 선을 행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금이 남아서 송아지를 만든 것이 아니고, 먹을 고기가 풍족하여 송아지와 양을 제물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지금 헌금을 많이 하면 존경받고 장로가 되듯이 그렇게 많은 상품을 내놓은 사람은
하나님앞에 자기 것을 내어 놓는 선한 사람으로 비추어 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열심히 살고, 많이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규례를 지키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이 선이라 하십니다.
형제들과 싸우지 말라 하셨느데 여로보암이 싸움을 걸어왔고
아비야는 싸우려 하지 않았으나 복병때문에 죽게 되었는데
이 때 울부짖으니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치시고 다시 강성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십계명을 지키는 삶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이니 직접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오직 규례와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날마다 죄에 빠지는 것은 육신의 한계로 인해 너무나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게 하시고 속죄의 절차를 두시고
범죄하였으나 성전에서 죄를 회개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나의 백성으로 인정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단지 열심히 사는 것만 내세우고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본문입니다.
오늘아침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성령도 오시지 않았는데 지금처럼 물질이 풍요롭지 않고 일상이 고달팠는데
규례와 제사를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만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면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 misson impossible 이었을 것 같습니다.
주님 오늘도 주님이 주신 규례를 지키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렇게 물질이 풍부하고 혼돈된 가치가 많은 지금의 세상에서
규례를 지키고 하나님을 전심을 찾고 오늘 주앞에서 나의 사명을 다 하는 것이
또한 misson impossible임을 깨닫고,
미처 깨닫지 못한 복병들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울부짖어 이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내 기준의 선과 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선과악을 바로 알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허락하신 이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며
매순간 주께 도움을 구하며 주앞에서 선한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가족들과 만나는 시간 제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을 삼가고 겸손히 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