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애통함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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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19
2007-09-19(수) 사도행전 7:30-43 ‘구원의 애통함’
스데반의 설교가, 다른 조상들보다 모세 부분에서 길게 이어지는 것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죄로 심문을 받는 중, 허락 받은 변론을 통해
자신의 죄 없음을 주장함과 동시에 예수님을 죽인 그들의 죄를 입증하여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고, 저지르려 하는지 말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합니다.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3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거절하고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짓자
하나님이 진노하여 그들을 죄 가운데 내버려 두셨던 역사를 상기시켜
같은 죄를 반복하는 그들을 꾸짖는 스데반의 설교가 이어집니다.
스데반은 변론의 소재를 유대의 역사에서 찾았지만 자신의 구명을 포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가며 그들을 회개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부형들’이라는 말에 묻어나는 구원의 애통함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2000년 전의 스데반이 설교를 통해 나에게 주는 메시지도
매 주일 설교를 통해 목사님이 전하는 메시지도 구원의 애통함입니다.
기도, 전도, 해외 선교의 바탕도 구원의 애통함이어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주제를 공부하며
왜 성경을 지식적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건 남을 가르치기 위함도 아니고
‘유레카’의 기쁨을 느끼기 위함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인데 실천하는 자세가 겉으로 나타날 때
애통한 마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속사의 애통함은 ‘슬퍼하고 아파하는 마음’이지만
구속사의 애통함은 ‘내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남편의 죽음 앞에서 교양, 체면, 관습 다 버리고
병실로 뛰어 들어가 자신의 목숨과 바꾸려 한 것이 남편의 구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40 년 동안 작성하신 모세의 체크리스트에는
형제의 구원을 향한 ‘애통함 지수’ 단일 항목만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애통함 지수 100 돌파에 40 년이 걸린 것은
세상 지식과 교양과 명예와 야망을 내려놓고 낮아짐의 자세를 갖춘 후에야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애통함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성경 지식이야 성경책에서 찾아보면 되고
말씀 해석이야 세상에 즐비한 성경박사님들한테 의뢰하면 되지만
애통한 마음은
라미네이팅으로 덧씌울 수도, 날염으로 무늬만 낼 수도 없는 바
세포까지 물들이는 거듭남의 변화가 있어야 함을 새삼 깨달음에
기도 부탁 받을 때마다 그러겠노라고 생색은 내지만
형식적인 기도의 시간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내가
언감생심 구원의 애통함을 논할 자격이나 있는지...
그래서 소망합니다.
구원의 애통함으로 가족과 형제와 세상을 사랑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