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주 예왕/행7:17-291.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모세이야기는 웬만큼 아는 이야기 입니다.
저 역시 모세 이야기는 머릿속에 외우고 있을 정도로 익숙합니다.
하지만 모세 단락의 기존의 해석이 많이 오해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좋은 해석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제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애급 왕 바로가 이스라엘을 핍박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냐면
하나는 애급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여 많아졌기 때문이고
또 하난 요셉을 알지 못 하는 새 임금의 등극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하나님의 때가 가까워지매~ 라고 말씀하고 있답니다.
어떻게 핍박합니까,
그가 우리 족속에게 궤계를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남자 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그 때 모세가 나서 어떻게 준비되었냐면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게 됩니다.
이때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모세나이 40이 되었을 때 모세의 생각과 행동을 주의하여 살펴보겠습니다.
40이 되자 그 형제를 돌아볼 생각이 났는데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애급 사람을 쳐 죽였다고 합니다.
아마 동족이 애급 사람에게 원통한 일 당한 것을 목격한 모세가
동족 편에 서서 애급 사람과 싸웠고 그 애급 사람이 죽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 25절 에서 해석하기를 모세는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누가 맞고 누가 잘못인가여,
기존의 해석대로 정말 모세가 도(道)를 덜 닦아서 순간적으로 실수를 한 것인가,
또 어떤 상황이 발생하였습니까?(26a)
모세가 무슨 명분을 들어 싸움을 말립니까. 너희는 서로 형제라:26b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
우리 모두 때와 관련한 하나님의 인도를 구했던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과거에 하나님께서 너무나 분명하게
성전 만들기에 대한 비전을 보여 주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내 생각과 뜻을 펼치는데 있어 공동체로 부터의 지지를 받지 못했을 때
얼마나 야속하고 고독했던지 아마도 제 신앙생활 중에 가징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여호수아1:8절을 통해 율법을 공부하면 네 길을 형통케 하시겠다고 하셨으며
느헤미야서를 읽을 땐 성전을 짓게 할 것 인데 그 일에 있어서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해 주실 거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셨기 때문에 가정교회에서의 티칭은
제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성전 만들기가 아닙니까,
그래서 전 겁도 없이 지금으로 부터 7년 전에 60여명의 공동체들과 함께 위탁 목회를 출발하였습니다.
평신도가 목회하는 가정교회 말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딱 2번 하고서 지금까지 설교를 해 보지 못 했습니다.
가정을 다스리지 못 한 사람이 설교하면 안 된다는 공동체의 거절로 인해서 말입니다.
그 때 이 스데반 본문을 묵상하면서 모세 아저씨의 속절없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일이 수포로 돌아갔고 미디안 땅으로 도주한 모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29b)
모세가 나그네가 되어 아들 둘을 나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0-29절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거절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때가 차서 모세를 지도자로 하나님의 뜻이 시도 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거부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 제 논리에 대한 증거를 위해 히11;27절을 읽겠습니다.
히11장은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믿음을 간증하였는지 그 예를 들어서 기록하고 있는
믿음장인대여
4절에 아벨은 믿음이 있었기에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5절에 에녹은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7절에 노아는 믿음이 있었기에 아직 보지 못한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 하였습니다.
27절에 언급된 모세도 이 문맥 가운데서 이해해야 하는데요.
모세가 믿음으로 애급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여러분 이 상황(히11:27)은 어떤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만약 이 본문이 출애굽의 상황이 아니고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는
그 상황 이라면 히브리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로 구약의 선진들은 그들이 바라는
믿음이 확실했기 때문에 각각 믿음의 행동들을 한 것 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고
사라는 나이 들어 단산하였으나 약속하신 이가 미쁘신 줄 알고 믿었으며
모세의 부모도 아름다운 아이인줄 알고 임금의 명을 거역하면서 까지 석 달 동안 숨겨서 키운 것처럼
히11;26절의 모세 역시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는데 27절엔 애급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약속을 붙잡았다 그 말 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가지고 모세의 믿음 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히11:27절에 기록된 떠남의 주체가 누구 같습니까, 모세인가여 이스라엘인가요,
원어에 보면 복수가 아니고 단수로 표기 되어 있는 것은 앞서 말 한 것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답니다.
두 번째 증건 출2:15에 나타난 내용이 만약에 단순한 우발적 살인 이었다면
애굽왕이 하찮은 살인사건 하나 때문에 히브리 노예를 죽이려고 직접 계획까지 세운 것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자 ,이제 출애굽기 2:15절과 히11:27절을 동시에 읽어 보자구요.(본문읽기)
어때요, 모세가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치곤 다소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한 모습이 관찰되지 않은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을 빌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플랜을 가지시고 족장시대 부터 거듭거듭 그 뜻을 비치셨습니다.
모세역시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알 준비되고 훈련 받아서 믿음을 따라 행동하였는데
이스라엘의 거절로 인하여 심한 좌절을 맛보아야만 하였던 것입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모세가 미디안에서 자신의 아들을 낳고 자신의
심정을 게르솜 이란 이름을 지어 표현했을지 모릅니다.
게르솜을 번역하면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인대 이 얼마나 답답하고
아픈 심정 이었겠습니까,
3.
제가 딸만 둘 있는 딸기 아빤 대여 큰 딸은 무식하게 믿던 시절에 낳은 자식이라
별 생각도 없이 에스더라고 지었고.
둘째딸은 넘남 힘들어서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싶었던 바로 그 때 이름을 지었습니다.
제가 기뻐할 예 자에 임금 주 를 써서 예주(Jesus is Lord)라고 지었는데
도저히 예수님이 나의 주라고 고백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에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이름 지은 것을 보면 저도 오기가 상당한 놈이지요.
만약에 아이를 하나 더 낳는다면 기필코 예왕 이라고 짓고야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나의 왕,
여하튼지 이름은 작명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모세는 게르솜으로,
저는 예주로 지은 것 입니다.
오, 나의 예주!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보내신 모세를 거절한 조상들처럼
영원토록 주인으로 모시고 섬겨야 할 나의 왕 예수를 왕 따 시키고만
나의 변덕을 주님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님, 어려움이 깊어가는 때에 더욱 아름다운 일을 준비하시는 주의 섭리를 믿나이다.
이제는 감당키 힘든 상황이 발생 할 때 마다 이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지혜로 넘어가게 하시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더라도 그 약속만은 붙잡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2007.9.18.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