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수준에 머물던 아름다움이 벗겨질 때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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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18
26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27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28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29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신혼시절이 어느덧 지나고
지금처럼 그때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몸 굴리며 사는 연유에서인지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허나 이스라엘의 그 곤고한 노예 시절임에도 생산이 왕성했던 것을 보면 임신과 삶의 고단함은
별개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울 시모님 아이를 기다린다는 증거로 홍콩 다녀오시는 길에 아기 옷들을 몇벌 사왔는데
그 시절 나는 아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러다 결혼 이 년 후 아이가 생겼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게 엄청난 도전과 영광의 말씀으로
정오의 그 밝은 햇살을 가르며 다가 오셨다
그 시절 기독교 방송에서는 정오가 되기 오 분전 짧은 설교를 보내고 있었는데 분주하기
이르데 없는 사업소에서 종업원들 점심 준비며 세일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인들
내 정신을 집중 시킨다는게 쉽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기여코 그 분주함속에 한 목소리로 찾아 오셨다
그 목소리가 바로 나로하여금 언약의 태반을 안고 주께서 남편과 나를 빌어 태어나도록 만든
언약의 세 자녀들이다
주께서 그 때 방송을 통해 감동을 주신 것은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로마서 8장 19절-21절) 는 말씀이셨다
그때가 아마 임신 이개월쯤되였을터인데 이 철부지가 아기를 임신했는데도 정신없이 일하느라태아를 위한 기도조차 도무지 하지 않으니 성령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 마음 심히 감동시키는
긴급 멧세지로 찾아 오셨다
지금도 그 순간을 추억하노라면 나는 한없이 숙연해진다
그때부터 나는 언약의 상징성인 자유와 해방과 영광을 바라보며 내 잉태한 생명이 피조물조차 학수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길 기도했다
그 기도는 첫 번째 아이에게만 한정지을 수 없는 우주적인 기도인지라 둘째 아이 임신중에도 그 기도를 지속했다
더구나 둘째 아이 임신 중에는 날마다 참담한 북한의 소식이 들려오던 터인지라 해방자 모세 를 구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긴박한 영적 투쟁속에 기도를 드렸다
신기하게도
둘은 다 해방과 자유와 영광을 상징하고 있는 특별한 날들에 태어났다
큰 아이는 유월절인 정월 십사일 한 밤에 태어났고
둘째 딸은 광복절인 한 낮 정오에 태어났다
산다는 것이 묵상이다라고 진술하는 내 삶중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내 자녀들이 언약의 상징성을 느끼도록 태어난 날들까지 알아서 주장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감찰성이다
왜 나는 그런 엄청난 기도를 했을까?
왜 나는 그런 모진 기도를 했을까?
왜 나는 나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아이들에게 실어 놓았을까?
내 영적 행보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었고
그러다 아예 후퇴하고 싶었고
또한 앞으로도 후퇴하고픈 감정들이 밀려올정도로 허무와 탄식과 굴욕과
고통과 눈물과 압박이 무엇인지 실제로 내 영이 그 고난의 풀무속으로 들어가 통과해야 할 것인데..............
우리들 교회 버젼처럼 나는 되였다함이 없어 죽는 날까지 그런 풀무를 거친다 쳐도 내 자녀가 이 과제를 또 물려 받아야 한다면 나는 주님께 이 과제를 되물리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작년엔
실제로 그러했다
내가 왜 내 딸을 놓고 그런 엄청난 기도를 했을까?
찾아가 손 내밀어 건져주지 않으면 도무지 흐를래야 더 이상 흐를 힘이 없어 거기 그 자리에서
고스란히 썩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운명들을 건져 줄 수 있는 언약의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를 수시로 했으니 그 기도를 되물리고 싶은 순간들로 가득찬 지난 해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내 자녀가 먼저 운명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는 걸 내가 자각할정도라면
내 딸이 겪는 이 21세기 황홀한 문명과 화려한 인간들이 주는 아픔과 고뇌와 허무는 얼마나 깊은 것이련가?
묵상이 너무 무거워져 우스개 소리 하나 끄집어 내어 보련다
내가 그렇게 둘 다 딸을 낳은 후 하나님께 속 깊이 몇 번 중얼거린 말이 있었다
하나님!
전 하나님을 믿었다가 마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입니다
나는 당신께서 내게 주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을 달라는 기도는 했어도
하나님의 딸을 달라는 기도는 한번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입 밖으론 감히 내놓을 수 없는 그런 나의 주절거림에 그분은 내게 오년 후 아들을 주었다
정말 그 아들은 내 생각 밖에서 태어난 아들인데 이 아들은 남편과 내가 약혼일 이른 아침에
태어나게 되여 장차 오실 주님과 혼인할 때까지는 나를 한정없이 약혼이란 언약의 상징성안에 꽁꽁 묶여 살도록 만든 아들이기도 하다
그 아들은 그렇게 늘 내 생각 밖에서 자라고 있다
내 생각 밖에서 자라고 있기에 그 아들만큼 나를 하나님의 줄로 꽁꽁 동여메주는 믿음의
채찍은 없지 않을까 싶다
울 세 자녀들은 한국 교회라면 다들 설래 설래 한다
이민 교회가 준 악영향을 한 몸에 다 받으며 교회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서글픈 일이련가?
그렇게 다 내 생각밖에 있어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굳게 붙잡는다
나는 그분이 성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그분은 그분의 다함없는 성실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모세가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 가 형제 라는 말로 우리는 한 동포라는 것에 호소하려 하지만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모세가
보여주는
그 준수함과
그 귀족적인 자태와
화려한 궁중의 옷과
매끄러운 궁중 메너와
늠름한 기개와
단단한 어깨와
빼어난 온갖 눈빛은
도무지
환란과 곤고로 몸에 쩔고 쩔은 노예와 형제라 하기엔 너무나 괴리감이 있는 것을 본다
결국 모세는 왕궁을 버리고 광야로 들어간다
초딩 수준에 머물고 있었던 자신의 아름다움을 벗는 길은그 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울 둘째 딸은 얼마든지 이름 있는 명문 대학에서 공부 할 수 있는 아이임에도 주께서는
그 딸을 한없이 낮고 낮은 곳으로 지금 보내어 공부를 시키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게 하나님의 특권적인 은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딸뿐만이 아니라
큰 딸이나 막내 아들이나 그들이 가는 길에 큰 안심을 주 앞에 보여 드리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그렇게
하나님깨서는 내 자녀들을 초딩 수준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만 있으면 간고가
무엇임을 아는 언약의 자녀들로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