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역대하11:23)
이번 차 사건을 겪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구속사적 관점'이라는 말씀을 많이 묵상을 하였습니다. 몇달전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조금이나마 깨우칠 때 처럼 이번에도 저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찌릿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의 차는 누나와 같이 타기로 하고 누나에게서 가져온 차 이기에 팔 수 있는 권리가 100% 저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있는 아내가 차를 팔든지 누나에게 가져가라고 하든지... 계속해서 저에게' 전갈의 채찍으로 친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해석이 안되었고 계속해서 옳고 그름으로 따지다 보니 대화가 끝이 나지를 않고 이야기를 할 수록 서로에게 상처만을 주었습니다. 아내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중요한 것은 그런 사건 속에서 아내를 애통해 하는 마음이 저에게 하나도 없었고 오로지 아내를 정죄하는 마음만 가득하니 잠시나마 제가 지옥을 살았던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지혜가 신앙을 앞설때 어떤일이 따라 오는 지는 다음장에서 보여준다고 합니다.세속사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면 항상 서로가 피를 흘려야 하고 상처를 주고 받지만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해석을 해야만 자기가 해석이 돼냐고 말하면서 기분이 상한듯 말을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또 제가 어떤 적용으로 자기를 기쁘게 해 줄까 기대를 하는 눈치입니다. 이번 일로 제가 아내에게 단순히 돈만 벌어주는 머슴이 아니라, 모든일을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저의 보석인 아내를 위해 구속사의 십자가를 지고, 인생의 목적인 거룩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 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항상 목소리를 크게내는 아내보다 목소리를 깔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하는 제가 더욱 악하고 욕심 많은 죄인이라는 것도 인정이 됩니다.
적용-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아내를 체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