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1:1-23)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갈라져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을 뻔 했다가 공존하는 모습(1-4)이 영락없는 남북한의 모습 같습니다. 북한의 침입을 대비해 국방력과 경제력을 키우는 것도 르호보암의 견고한 성읍을 세우는 모습(5-12)과 동일합니다.
레위인과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이 산당예배와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북이스라엘을 피해 남유다 예루살렘으로 넘어오는 모습(13-17)은 남쪽의 자유와 부를 향하여 우상숭배 북한에서 탈출하여 내려오는 모습의 표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강해지고, 잘 살게된 남한이 악하고 음란한 세상으로 병들어 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르호보암의 음란한 축첩행위 같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적 지혜로만 사는 우리의 모습은 르호보암의 후계자 정책으로 비춰집니다(18-23).
놀라울 정도로 연결이 되니 정말로 ‘성경적 표징’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라’ 뿐만 아니라 ‘나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질서에 순종치 못한 후배교수로 속상해 하다가 전쟁을 치를 뻔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들공동체의 말씀과 처방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보여지는 우상숭배와 진실한 예배의 차이로 사람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축첩을 하거나 내 마음대로의 후계자정책과 비유되는 행위를 한 것은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나의 지혜와 인기로 얻어지는 비극’을 경고하는 것 같습니다. 인기가 있을 때 조심해야 겠습니다.
적용> 병원에서, 교회에서 사람이 모이고 관심을 받을 때 겸손히 인사를 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