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게서 진정한 섬김의 모습을 봅니다.
작성자명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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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17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을 따르는 대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또는 우리에게) 약속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보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찾아 어렵게 도착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발붙일 땅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게다가 자식도 없는 사람에게 네 후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하십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런데 그 후손들 조차도 그 땅을 떠나 타지에서 300년 동안 죽도록 종살이 하다가 겨우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나안까지 왔는데,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약속이라는 것이 정말 가혹할 정도의 고난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징표로 할례를 받습니다. 자손 대대로 고난을 겪게 될지도 모를 그 약속을 받고 자식까지도 지키게 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진정한 섬김의 모습을 봅니다. 그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부귀와 명예를 바래서도 아니고 자손들의 성공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나와 내 후손들과 끝까지 함께 하실 것이라는 그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을 떠나 오랫동안 방황할 지라도, 어떤 고난 중에 있을 지라도, 늘 함께 하시며 결국에는 당신께로 돌아와 섬기게 하시리라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되었다 함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믿음의 수준이 정말 보잘 것 없던 때에 주님을 섬기는 것의 의미를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대학원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실제로 몇몇 신학대학원의 입학전형과 시기를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본질을 세우고 중수하기 보다는 그렇게 세상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렇게 헛된 것에 마음을 쏟던 저를 주님께서는 때마다 고난을 통해 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정말 밉고 원망스럽다가도, 내가 힘든 것을 아신다 하니, 나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신다 하니, 그렇게 주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위로 받으며, 조금씩 조금씩 주님 섬김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 세상적인 것에 집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서,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섬기는 본질을 회복하라고 부르짖는 스데반의 메시지가, 여전히 사람에 대한 애통함보다는 세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제게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주님만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섬기듯 다른 사람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저를 애통해하시듯 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애통한 마음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