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레간자 /행6:8-151.
통장에 잔고가 하나도 없어서 죽을 맛입니다.
집에서 오삼(오징어+삽겹살)불고기에 맥주 한 잔을 들이키고
컴 앞에 앉았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유난히 제 귀를 거스릅니다.
창문을 삐꼼 열고 내려다 봤더니 역시나 아래층 코쟁이 입니다.
콩글리쉬로 시끄럽다 고 했더니
이놈이 피아노 피아노 를 연발합니다.
아니, 이넘자슥이,
피아노는 멜로디고 오토바인 노이즈 (noise )가 아닌가,
2.
스데반 설교는 평신도인 제가 처음으로 강대상에서 설교한 본문입니다.
이미 열정도 미래도 다 죽어버린 제게
지금 그나마 자잘한 흥분이 남아있다는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T.N.T처럼 출발한 오순절 성령강림을 베드로 사도가 해석하기를
예수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건인데 그의 사역은 이스라엘 역사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언약하셨고 성취하셨던 그 역사로
신구약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설교의 여파는 3000-5000명을 회심케 하기에 충분했고
그때마다 유대인들의 강력한 반발이 나타나지만 그러나 제자의 수는 자꾸만 많아졌습니다.
5장에 와서는 너희가 예루살렘에 이 도(道)를 가득하게 할 정도로
위협을 느낀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죽일 계획을 모의하였으나
가말리엘의 신중론으로 때리고 놓아주었고 사도들은 이 유대교의 핍박을
시편2편을 인용하여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규정지으면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시작됩니다.
이윽고 매를 맞고 풀려난 사도들과 온 교회가 유대교를 세상 세력으로 규정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하나님의 손이 임하여 말씀이 흥왕케 해 달라고 기도하는 한편
구제문제로 인하여 생겨난 헬라파와 히브리파 간의 갈등을
집사임명을 통해 슬기롭게 처리하였습니다.
이때 제사장의 많은 무리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서(6:7)
행1:8절에 약속하였던 예루살렘 지역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첫 번째로 성취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3.
정확히 4년 전 오늘 본문이 사도행전6;8-15입니다.
스데반이 변호해야 될 고소의 내용이 무엇이었냐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 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고(6 :11)하는 것으로 봐서
신성모독 죄에 대한 것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13,14절에 나와 있습니다.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 하는구나:13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준 규례를 고치겠다:14
고소의 내용 중 공통된 주제가 율법과 성전 입니다.
7절 부터 본격적으로 사건이 전개되자 대제사장이 먼저 묻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대답합니다,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직역하면
형제들과 아버지들인 남자들이여 라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말하자면 공회원들에게 아버지라고 칭하는 셈입니다.
아니, 지금 스데반이 아버지로 칭하고 있는 상대가 누굽니까,
바로 자기를 면전에 대놓고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몰아가고 있는 자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스데반 씨는 여러분 부형들이여,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저 같으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었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열받으면 말을 더듬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말을 하고 싶은데 단어의 첫 글자만 생각이 나고
시뻘게진 얼굴이 사나워지기 시작하는데
울 각시 말을 빌리면 전직이 의심스러울 만큼 무섭다고 합디다.
여기서 한 가지 배우고 지나갈게 있습니다.
싸움의 기술입니다.
가급적 상대방이 먼저 말하게 놔두고
기가 막히지만 원칙을 지키면서 논리를 펴 가야함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늘 나중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 이지요 .
물론 싸움에선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우리 성도들의 싸움은
상대의 기를 꺾어서 내 기가 더 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싸움도 수준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저희 각시와 이웃집 사는 향미 집사가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답니다.
자가 네들은 목소리만 컸지 실상은 신랑들한테 꼼작 못하는데
조용조용한 아줌마 00가 소리 없이 강하다고.
있잖어요, 싸울 때는 꼭 00 아줌씨처럼 싸우십시오.
소리 없이 강하게.
4.
집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의 인도를 저버린 채 살았지만
오늘 아침 제게 오셔서 다시 한 번 미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살다가 싸울일이 있거든 꼭 나중을 생각하여 싸우게 하시고
나의 남은 40대를 책임 있는 얼굴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나를 비우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스데반에게 마녀사냥을 자행했던 교회사의 아이러니를
이 땅의 교회가 또 다시 번복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2007.9.16.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