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나의 형제니라.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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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11
<아합이 가로되 누구로 하시리이까 대답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가로되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대답하되 왕이니이다.>(14)
<이스라엘 자손도 점고함을 입고 군량을 받고 마주 나가서 저희 앞에 진을 치니 이스라엘은 염소새끼의 두 적은 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와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붙이리니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진이 서로 대한지 칠일이라 제 칠일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을 죽이매 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열왕기상20:27~30)
적은 수와 많은 수의 싸움은 상식적으로는 많은 편에서 이기게 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싸움은 다릅니다.
그것도 장정이 아닌 소년들을 앞세운 싸움을 하였지만 결국은 승리를 하였습니다.
전쟁에 승패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내가 하루하루의 영적전쟁을 치르면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일이 주님과 함께하는 전쟁입니다.
나 자신이 연약하고 무능하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전쟁에 능하시는 분이시며 온 우주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저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테두리를 머리에 이고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러 가로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나의 생명을 살려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가로되 저가 오히려 살았느냐 저는 나의 형제니라.
그 사람들이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가로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저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저를 병거에 올린지라.
벤하닷이 왕께 고하되 내 부친이 당신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 보내리이다.
또 나의 부친이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가로되 내가 이 약조로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약조하고 저를 놓았더라.>(32~34)
대적인 벤하닷은 싸움이 불리해지자 생명을 구걸하자 아합왕은 그를 형제라고 맞아들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고 침범을 하였던 벤하닷을 형제라고 부르는 아합왕의 어리석음을 보면서 과연 나는 원수들과 적당히 타협을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아마 대적과 동거하면서 더 좋은 것들을 얻으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물과 불이 섞일 수 없듯이 사탄 대적들과는 타협을 하면 안 됩니다.
조금 편하고 좋은 것들이 생활하면서 유혹을 합니다.
나의 연약한 육신은 자꾸만 그것들의 유혹에 솔깃하지만 매일 영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매일의 말씀들이 나를 다시금 새롭게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저가 급히 그 눈에 가리운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저는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줄 알아본지라.
저가 왕께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저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저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41~42)
대적과 화친한 결과는 너무나 엄청나게도 그 자신이 목숨을 내놓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활을 하는데 상당한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만큼 내가 영적전쟁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전쟁은 그냥 대충하는 것이 아니고 적을 이기지 못하면 내가 쓰러지는 절체절명의 싸움입니다.
또한 혼자서는 어려우므로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며 멋진 승리들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영적전쟁을 준비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