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릴때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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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11
사도행전 4장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하는 자들로써 당대 바리새인들에 비해 부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교리는 당연히 배척받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속임과 기만의 명수인 사단은 오늘날도 그렇게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며 얼마든지 주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우리들의 생명을 이생으로 제한시켜 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예루살렘의 풍경을 순식간에 바꾸어 가고 있는 사도들의 증언은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리라! 때가 되면 속히 이루리라 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성취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외침에 오천명의 남자들이 돌아 오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구로치 못했던 자가 순간에 자민을 낳는 역동적인 풍경입니다
주님을 먼저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아 있는 것만 같았던 사도들이 성령과 함께 낳은 백성들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인 결과로 지상에 부어진 성령은 허다한 자민들을 사도들의 증언을 통해
낳게 하심으로 사도들을 높여 주시고 계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두번째로 내가 깊이 통찰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뇐 입니다
베드로 역시 하나님의 손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를 높혀주시리라고 말씀해주신 분으로서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혀 주심이 무엇일까?
스스로 경험하면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라 사료됩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높아질 것인가?
사도행전은 우리를 높혀주는 것이야말로 단연코 성령 이라고 증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나를 놘기 위해
내 자존감을 상승시키기 위해
나는 얼마나 헛된 영광과 꿈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채 살아 왔을까요
생각하면 기막힌 통증입니다
더많은 정보와 지식과 재물과 그외 온갖 세상 안목으로 나를 높이려했던 교만함이
이제와서는 나를 찌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전에 이제라도 순전히 성도들과 교회와 주님의 종들을 높혀주는 것은 성령뿐이라는 것을 알게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께서 성령을 교회에게 부어주시는 것만큼 지상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높혀주시는 것은
없다고 깨달으니 얼마나 기도가 간편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와 주님의 종 그리고 성도님들에게 성령 충만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 심령이 한없이 즐거워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오늘 오후
이민 와 사업상 십년 넘게 거래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미세스 하!
너무 착하면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니 이제부터는 제발 맘 독하게 먹고 살아야해
그래 웃으며 나보다 십년 더 사신 그분께 말씀드렸네요
예수랑 같이 살면 그분께선 스스로 이용 당하는 것을 선택할지언정 독한 맘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 분이시니 그분이 하시는대로 믿고 따를 뿐이라고.........
그렇게 답변을 해드리고 나선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생애 모든 답답함이나 회의나 아픔이나 눈물이나 우겨#49984;이나 곤비함등을 한순간에 몰살시킬 수 있는 핵폭탄은 과연 부활의 주님이셨다는 것을........
죽고자하면 살겠고 살고자하면 죽는다는 그 부활하신 주님의 목소리 한마디면 희생과 헌신뒤 몰려오는 온갖 휴우증들이 치료받아 다시금 상큼해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아름답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희생과 헌신일지라도 부활의 주님께 접목되어 있지 않으면 사실 그 헌신과 희생의 나중 모양도 첨처럼 순수하게 보존시킨다는게 생각처럼 쉽지 않답니다
이러할 때 부활은 비단 죽음 이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지금 내가 여기서 경험하는 삶의 에너지와 질료로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처럼 남편따라 나도 산제물 되여 다 태우고 나면 남은 것이라곤 텅빈 몸통,텅빈 주머니일 때가 종종 찾아온답니다
그게 어디 일년 이년 삼년으로 끝나는 것이겠습니까?
그런 순간마다 나는 참 많이도 진저리쳤습니다
이 짓 그만할 것이라고요.....
이 미친 짓 그만 할 것이라고.....
내안엔 고양이보다 더 표독스러운 호랑이가 살아 그렇게 으르렁 남편 잡아먹을듯이 울어댔답니다
남편은 내 으르렁거림이 다 끝날때까지 침묵만 지킬뿐.....
그러다 남편도 성질나면 한 방 날립니다
주님이 네 몸과 네 돈만 달라하시는 분인줄 아냐?
네 생명까지 달라 하시는 분이다
그 말이 철퇴처럼 영혼을 후려치면 이내 난 기절해버릴 지경이 되곤 했지요
지고가던 십자가 무거워 견디다못해 쓰러질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눈에 보이는 남편보다 오히려 육체로 함께 거하지못하면서도 늘 육체로 함께 거하는 그 이상으로 날 찾아 오시는 부활의 주님이셨지요
하루는 영육간에 지쳐 밥 맛도 없고 아예 밥 할 기력조차 없어 남편과 둘이 함께 쓰러져 있는데지역 교회 목사님께서 연락도 없이 생선을 사가지고 와 손수 기름에 튀겨 주시며 장로님 어서 일어나 드시라는 것이였어요.
그 순간 내 영안이 열리며 보이는 풍경이 있었답니다
울 서성자님께서 자주 언급하시는 갈릴리 제자들에게 찾아 와
생선을 구워주시며 조반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부활의 주님이시랍니다
이 순간 서성자님과 그 가정에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가 주시길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묵상을 써내려 갑니다
그렇게 보여지는 것을 목사님께 말씀드리자 목사님께서 저희들에게 해주신 말씀이 오늘따라 왜 이리 생각이 나는지요
여기 베드로보다 더한 이가 있습니다 라며 하신 말씀이........
아뭏튼 그 때 남편과 나는 그 생선을 먹고 기운을 내 그 다음날 일어날 수 있었답니다
베드로보다 더 크신 이는 바로 부활의 주로 그분이 여기 있다는 말씀처럼 힘을 실어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이
텅빈 몸통
텅빈 주머니를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못하지요
오히려
몸통이 텅비도록
아니 그 텅빈 몸통조차 음습한 감옥에 갇히도록
그리고 주머니가 텅비도록 살아야 하는 것이 오늘 제자들이 보여주는
부활 신앙이였음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