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서 일어난 오순절 사건을 증언한다
작성자명 [안나 하]
댓글 0
날짜 2007.09.07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주신 말씀가운데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이 예수를 높이신 결과 지상에 일어난 사건이 바로 성령 강림
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실거라고 미리 가르쳐주셨습니다
내가 내 죄를 볼 수 있다는 것
이처럼 귀한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 했는데 내가 내 죄를 날마다 보는 것처럼 인생에서 귀한 선물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성령을 선물로 받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록된바
죄가운데 은혜가 많다는 것은 죄를 많이 지어야 은혜가 많다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어서 죄를 자각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죄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내 혈당속에 녹아 있고 내 관절 뼈 마디 마디속에 박혀 있거나 내 혼
깊숙히 정체를 숨긴채 오늘날까지 숨어 있는 죄들이 얼마나 많은지
내 죄의 허다함은 그렇게 내 상상을 초월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 허다한 죄를 이전엔 미처 보지 못했으니 얼굴 빤히 들고 다녔지요
사실 내 죄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답답한 순간도 없을 것입니다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가 안되는 것이지요
내 죄를 보고 회개 할 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와 함께 심판 받아 내가 죽었다는 것이 믿어짐과 동시에 또한 그분의 의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났다는 것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오순절 성령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체험된 자는 주님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온 집안의 주와
그리스도로 세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나를 주인으로 모시거나 혹은 집안의 어른을 주인으로 모시거나
공동체의 지도자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어주시고 또한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 주신 주님을 주로 모시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내 공동체속에 온전히 붙어 있도록 만드는 명분과 실리는 바로 나의 주인되신 그 주께서 내 공동체를 그의 희생의 피로 탄생시켰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안에 직분자들을 인정하고 따르고 존경하는 것은 바로 그 주인되신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때문인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주를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나
어떤 결정적인 순간앞에 서게 될 때면 나는 내가 진정 누구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는지 드러나게 되여 있는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다윗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글쎄
다윗과 주님 사이의 거리가 어느정도 떨어져있었는지
그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확신하건대 이 거리는 결코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와 내 앞에 계신 주를 보았다고 말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주님 오시기 사천년전의 사람인데도 분명 말씀은
그가 주를 보고 즐거워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 말씀은 울 주님께서 친히 자신의 입술로 선포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8장)
사람이 물리적인 공간이나 시간 너머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이 예라 볼 수 있겠지요
그야말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는 주님 말씀을 확연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다윗과 아브라함은 결국 떡뿐만이 아니라 말씀이신 주로 인하여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요
무엇이 그들로하여금 말씀의 증거를 쥐도록 하였을까?
위대한 믿음이 바로 위대한 증거를 낳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다시한번 믿음을 의로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것만 같은
아침입니다
다윗의 그 위대한 믿음은 저 머나먼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을 앞에서 뵙는 것만이 아니라 다윗이 요동하는 것을 막아주시기 위해 늘 자기 우편에 계신다는 것을 삶의 현장속에서 보게 된 다는 것이지요
이 주는 항상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십니다
그 생명의 길이 바로 내가 주님 발 앞에 무릎 끓는 길임을 보게 됩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속에 늘 그분께서 성령으로 내 우편에 계시는 것을 확신하면서 또한 내가 그 분앞에 무릎 끓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분께 명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내가 그분 앞에 그분의 발등상이 되도록 무릎 끓는 것은
나의 무릎 끓음이 곧 그분의 원수가 발등상이 되게 하는 일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원수인 사단은 내게도 원수된 바로써 주님과 나의 공동의 적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맥락에서 나는 무릎을 끓습니다
그 무릎 끓음은 나로하여금 얼마나 새벽기도를 사모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나는 현재 에워#49984;을 당하고 있습니다
허나 나는 나를 에워쌈의 강도가 아무리 높을지라도
진정 내 자유한 마음의 지성소는 에워싸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일어난 오순절 사건입니다
물론 나는 방언도 하고 환상도 보고 꿈도 꿉니다
그리고 병원도 갈 수 없는 시각에 너무나 당혹스러워 기도를 하면
신유의 은사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성령사건을 울 주님께서 말씀해주신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말씀해주시라는 것의 연장선에서 해석한 이유는 성령께서 내 맘을 그렇게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령을 너무나 불분명한 정체로 만들어 버린 과오를
이렇게해서라도 만회시키고픈게 내 소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신령한 말씀을 묵상하는 일조차 말씀을 혼잡하게 만드는데 한몫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