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에 앉아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작성자명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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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07
(행 3 : 1. 2)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오늘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일 먼저 우리의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이들이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 전도에 열심을 냈지만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모든 일에 제일 우선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때에 맞추어서 기도해야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순간 순간 우리의 삶에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에 고통당하는 이웃이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었건만 오늘은 그들이 더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성전 미문에서 구걸로 연명하는 한 불행한 사람에 대해서 다시 보았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성령이 충만하자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생각하다가 주일 대예배 시간이나 오후 예배 시간에 예배에 참석하기 보다는 빵집이나 당구장 아니면 교회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찌라도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그 분들은 예배에 들어오지 못하고 계십니다.
1/ 어린 자녀들 때문일 수도 있고
2/ 예배 시간에 늦게 와서 들어오기가 민망해서 그럴 수도 있고
3/ 여러가지 인생 문제로 인해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4/ 성도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따분한 예배보다 더 즐겁기에 그럴 수도 있고.
etc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만약 누군가가 예배 안으로(성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의 신앙이 앉은뱅이와 같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설 수 없고 혼자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앉은뱅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앉은뱅이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 무릇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할지니 곧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곱사등이나 난장이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불알 상한 자나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아와 여호와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아와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그는 하나님의 식물의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라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레 21:16-23)
구약의 율법은 육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하고 부정한 사람들을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앉은뱅이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율법 아래에 살고 있는 사람은 결단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육체적으로 불완전했던 자가 예수님으로부터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여 온전해 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성령이 이 땅에 강림하시자 성령을 받은 사도들로 인해서 치유의 역사가 이루어져서 이런 사람들이 더 이상 성전밖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전으로 들어올 길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요한을 보면서 우리는 앉은뱅이의 문제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이 충만하자 성전 밖에서 구걸하는 그 사람을 예수 이름으로 고치고 성전안으로 예배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일을 우리들에게 적용시킨다면 우리 중에 성령에 충만한 자들이 교회 밖에서 어슬렁 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쩌면 우리들에게 그런 책임을 맡기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끔 이해가 가지 않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느 한 목자가 100마리의 양이 있었는데 한마리의 양을 잃어버렸답니다. 그랬더니 99마리의 양을 놔두고 가서 한마리의 양을 찾으러 나갔다고 합니다. 산을 넘고 들을 넘고 강을 건너고… 교회가 성장하고 커지다 보면 한 사람에 대한 이런 목자의 심정이 식어질 때가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래서 커져만 가는 교회를 바라보면서 만족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성령이 우리에게 하시는 음성을 못듣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을 내어 잃어버린 한 사람이 누구인가, 상처받고 예배의 자리에 가지 못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일부러라도 찾아보지 않으면 한마리 양(앉은뱅이 같은)은 영원히 잃어버린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현재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정적으로 고통당해서 성전 문곁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한 사람이 유난히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 분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분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알아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