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5:22~6:9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습니다.
딸이 삼일 째 아픕니다. 온몸에 열이 나고 밥을 먹지 못합니다.
세 가족이 한 숨도 못 잤습니다.
딸이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더욱 마음이 쓰입니다.
딸은 아직도 영화관련 직업을 생각으로 열심이며,
몇 년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자신의 학원비와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친구 같은 오빠를 천국에 보내고, 아프고 힘들어하는 딸을
보면서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들 사고여파로 졸지에 피고가 되어서 민사소송을 당하다보니
지쳤습니다. 금방 끝날 것 같은 재판이 보험회사 측의 항소까지
이어져 21개월을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그 때“ 딸은 고등학생이었고, 친구처럼 지내던 오빠였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 후“ 딸이 힘든 살림에 대학을 들어갔으나, 일주일 만에
자퇴를 하고 다음해에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상처가 컸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귀한 것 먼저해주며, 단란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들이 나만의 목적을 가지고 무개념인
아빠로써 자식에 대한 당연한 가장의 도리였고,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딸은 모태신앙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말씀으로 양육이 되지 않았고, 인본적인 생각으로 사랑했으며,
내가 모범이 되어 가르쳐야 함에도 아버지라는 구실로 마냥
예뻐하고, 나는 가정을 소홀히 하며,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나중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녀의 행동이, 주의 뜻에 합당하게
가르쳐야 했음에도, 타고난 성품대로 잘 커주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며 살았습니다.
가정은 아버지기 변하지 않으면 바뀌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베어진 성품과 습관이 있지만,
소중한 아내와 자녀가 에게 최대한의 배려(?)는, 아버지인
내가 주안에서 변하여 새사람 되는 것입니다.
아내와 자녀의 변화됨을 기다리지 않고, 가장인 내가 변하는
것이 거룩으로 가는 길임을 믿습니다.
지고지순하던 아내는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는 일이
생기면 아직도 버럭" 하지만, 모든 것이 나로 인하여 만들어진
잔해물(?)임을 알기에 선하게 생각하고......
아내가 아직도 나의 죄를 큐티에 연결하여 오픈하기를 원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큐티하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살다보니 물질이 부족해도 걱정이 줄어들고,
아내도 편하게 해줌에 감사합니다. 가야할 길이 멀지만,
이제부터라도 가장으로써, 창조질서에 걸 맞는 행동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픈 딸의 머리에 아내가 올리던 물수건을 내가 올려주겠습니다.
스킨십 싫어하는 아내를 허락받고 안아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