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새벽 예배를 가는데 아내가 큐티인을 네권을 꾸립니다. 어제도 가져가던데 오늘도 가져갑니다. 새벽 기도에 오시는 분들 중에 우리들 교회 성도분들이 아닌 분들이 더러 오시는데 그분들에게 전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뭐하러 가져가냐?” 물었고, “그 사람들이 알아서 사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분들이 낮에 교회에 오기가 힘들 수도 있으니 주면 좋지 않느냐?”고 합니다. 저도 회사 직원 두 사람에게 큐티 인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저와 아내가 다른 것은 저는 아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고 아내는 모르는 사람에게 무조건 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줄만한 사람에게 줍니다. (엡 5:1) <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하나님은 사랑받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사랑을 주셨을까요?
두 아들은 저를 존경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적으로는 그 아이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가 봅니다. 그 아들들을 어릴 적엔 저도 무척이나 사랑했던 기억인데, 요즈음은 제가 바라는대로 자라주지 않는다고,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고자 가까이 하려는 아이들에게 레이저 광선을 날리니까 아이들과의 관계가 겉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해주는 말이라고 하지만 저처럼 살려면 얼마나 힘든데 그 아이들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엡 5:1)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 자리까지 왔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내편 네편 나누고 네 편을 힘들게 합니다. 새벽 예배중에, 큰 아이가 얼마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라 힘들어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캐나다엘 가서 혼자 5년간을 살았으니 돈대주고 걱정한 것 외에는 제가 무슨 사랑을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 없고 힘 없는 어두움에서의 빛은 돈 잘 벌고 권세있는 자가 되는 것으로 알았었는데, (엡5:10) 주를 기쁘시게 하는 가정을 이루지 못하게 한 원인이 제게 있었습니다. 큰 아이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상처를 받고 떠나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에도, 그 이유에 대해선 잘 알아보려 하지 않고, ‘나가서 고생하고 나면 돌아오겠지, 그냥 두자, 그런 경험도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오늘 말씀처럼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 하지 않아서, 받은 사랑이 부족해서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생각을 못하는 지혜없는 자처럼 행동했습니다. 저는 부재중 아버지이면서 사랑없는 나쁜 아버지입니다.
적용으로 관계에서 힘들어하고 자존감을 잃은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제 관점에서 가르치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처럼 사랑하고 위로해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