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17-32
오늘 바울이 나에게 하는 말들은 주안에서 주님의 권위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내가 육체적으로는 여전히 이방인이지만 속사람은 새사람이 되어야하는데 아직도 세상의 허망한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교회 처음와서 말씀듣고 QT하면서 몰랐었다고 변명을 많이 했습니다. 수십년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안에 완고함이 가득하여 모르고 교회다니며 살았습니다. 지난 5년간 보고들은 것이 있어 아는 것이 많아졌는데 나의 속사람은 아직도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것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몰라서 범죄함도 죽을 일인데 알고 짓는 죄들이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욕심이 남았있습니다. 가지치기도 많이 했습니다. 주님이 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수고하지 않은 돈을 탐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욕심은 차치하더라도 남아있는 욕심을 말하려면 부끄러워 나누기가 힘듭니다. 이 욕심을 어찌 처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남아있는 것이 음란입니다. 이것 역시 과거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내가 할 수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지나가는 여자를 바라보는 나의 음란함은 수시로 항상 있습니다. 언제쯤 없어지려나 생각하면서도 큰 죄책감이 들지않는 것은 감각이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그런 모습이 싫습니다.
또 남아있는 것이 분노입니다. 내가 거룩해져가는 것인지 아니면 분을 낼 기력이 없는 것인지 분간이 안되지만, 화내는 것이 정말 많이 없어졌습니다. 요즘은 화가 올라오면 ‘내가 지금 화낼만한 상황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누구와 통화도중에 나는 전혀 화가 없었는데도 상대는 왜 화를 내느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수십년의 말투에 화가 배어 있었나 봅니다. 빨아내고 벗어버릴 것이 많습니다. 연약하여 분이 날수도 있지만 입이나 행동으로 범죄함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다행히도 나는 성품상 화를 오래 담아두지 못합니다. 때로는 분을 내서 혼내주어야 하는데 분을 찾을 수없습니다.
그럴때 나는 인침을 받은 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육체의 이방인일지라도
힘들게 혼자 사는 중년일지라도
속사람은 새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버려지지않는 옛사람을 용서하시고
예수님을 생각하며 사는자 되게 하시옵소서 Jesus Name Amen
적용>오늘은 욕심과 음란과 화내지 않는 적용을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