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이 부활이거든/행3:1-26 전 세계의 19억 기독교 인구 중에 10억이 천주교, 9억이 개신교도들이고
그 중에 오순절 은사주의 운동에 관계된 사람이 4억쯤 되는데
교회성장을 위해선 반드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야한다고 말한 사람은
베니 힌, 죤 윔버, 조 목사, 강남 3 인방 등등 대부분 대형교회 목사들입니다.
저는 신학을 하지 않았지만 사도행전을 묵상할 때마다 어떤 큰 상대와
신경전을 벌리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요즘은 제가 못 살아서 그냥 넘어가려다 분위기 깨는 소리한 번 하겠습니다.
주제는 오순절 성령에 대한 해석인데 제 결론은
한국교회 성령 론이 심히 걱정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적과 관련한 오순절 성령강림을 재현하려는 시도뿐 아니라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의견에 반대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전권을 위임받은 사도들의 사역에도
예수님과 같은 표적과 기사가 따랐습니다.
그래서 앉은뱅이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하자
모든 백성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의 지평과 해석자의 지평
이 두 지평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경해석이니만큼
그 본문의 온전한 의미 가운데 드러난 현재적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순절 성령과 관련된 베드로 설교(2장)를 보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 내용으로 하였고
오늘 3장에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히 그리스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대속적인 부활이므로 그의 부활하심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이제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은 새 생명을 누리고 시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증거로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으며
이 앉은뱅이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혜택을 입고 있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보통 병자가 치료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전 세계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모더니즘은 논리적,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18세기에서 지금까지 지배해 왔습니다.
이것이 지나가면서 논리보다는 체험으로, 머리보다는 생활의 체험이나 신비주의
성향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오늘날 이적과 표적 신학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요?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셨던 주님,
내 앉은뱅이 신앙을 고쳐주옵소서.
주님, 육체와 영혼이 온전케 되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은과 금은 없어도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하옵소서.
2007.9.7/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