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할 수 없는 나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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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9.05
9/5(수)
행2:22-36
이애실사모님의 성경일독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는데, 사모님께서는 다윗의 기사를 사사시대배경의 연장선에서 봐야한다고 강조합니다. 사사시대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미가의 신상과 레위첩사건은 정말 당시의 영적인 실상을 고발하고자 하는 사사기 사가(史家) 의 사관(史觀)이 반영된 내용이라 합니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면서 베드로의 설교속에서 나오는 다윗의 기사를 묵상하니 참으로 그의 영성에 고개를 떨굽니다. 오늘 말씀입니다.
내가 항상 내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2:25)
오늘 묵상에서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첫째 그가 항상 자기 앞에 계신 주를 보았다는 고백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다윗이 본 주는 다름아닌 성자예수였습니다. 오, 그 당시에 아직 성자 예수가 은닉되어 있던 시대에 장차 오실 우리 성자 주 예수를 구약시대에,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의 도덕이 완전히 부패되어 있었던 그 타락의 절정시대에 성자 하나님을 뵈웠음이라고.. 오, 그것도 항상 자신앞에서 너무나도 가까이 뵈웠음이라 합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볼 수 있단 말인가요? 마음이 청결한 자가 아닙니까(마8:5). 그가 어느 정도 마음이 깨끗했길래 하나님을 늘 보았단 말인가요?
오, 주 하나님, 그는 왕이면서도 자신을 왕이라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세상의 왕들과는 달리하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왕이라 하고 자신을 종으로 여긴 다윗이여,
인간이 조금 높은 자리에 있다 싶으면 자기 위세와 위풍을 자랑하려 하는 것이 보통 인간들이 아닙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을까요? 다윗의 영성을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오, 다윗의 우리 주 하나님의 사랑의 일편단심이여, 오, 오직 한님이여! 한 사랑이여, 한 마음이여(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왜 영성이 이렇게 밖에 안되는가 하고 세상을 탓할 수도 없고 시대를 탓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내 자신을 비추어보니 내 마음속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전부가 아니라, 아직 나의 일부라도 다른 사람에게, 아내에게 자식에게 기꺼이 내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내 몸하나만 간수하려고 하는 이 이기적인 자아 때문이 아닌가요. 아직 나를 죽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사는데 아직도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죽어야 우리 주님이 내게 생명을 보일 것인데(2:28), 오, 주여 이 한심한 종을 인도하소서 당신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심대로 나 자아를 내어 줄 수 있을 정도의 주 예수의 영성으로 이끌어주소서(2:23). 다윗의 영성으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