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2:1-10 [벗어내야 사는 삶]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려냈도다 (1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5절)”로 두 번에 걸쳐 “허물로 죽은 우리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허물은 원래는 피부였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그 피부가 세상에 노출되다 보면 허물이 되어 버리고 그것을 벗어내지 않으면 그것에 갇혀 새로운 피부는 숨을 쉴 수 없습니다.
근데 여전히 그 허물이 없어서는 안 될 피부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그 허물이 피부였던 시절만 생각하고 그 허물이 하나라도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습니다. 혹 나의 가족이, 나의 지체가 그 허물을 보고 안타까워, 한 조각이라도 떼어내려 하면 “니가 뭔데 내 것에 손을 대? 니가 내 인생 책임질거야?”하면서 화를 냅니다.
결국 허물을 벗어내지 못하면, - 1. 허물에 갇혀 숨을 못 쉬고 죽어버리거나, 아니면 2. 허물로 인해 너무나도 가려워 여기저기 거친 데 긁어대다가 새 피부에까지 상처 입고 피를 흘리거나 #8211;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분명한 사실은 나의 허물이 나 자신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피부였을 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그것을 허물로 인정하고 벗어 던져 버리기가 아깝습니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를 둘러싼 그 허물을 직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나에게 여전히 그 허물은 없어서는 안 될 피부일 뿐입니다.
그러다가 큰 사건을 만나 할 수 없이 허물을 벗어 던져야 하는 상황이 와서 바닥에 떨어진 허물을 봐야 “아! 이것이 피부가 아니라 허물이었구나” 알게 됩니다. 진작 그것이 허물인지 알고 벗어 던져 버리면 그러한 큰 사건이 오지도 않았을 터인데, 사건이 와야만 해석이 됩니다.
저는 너무나도 벗어내야 할 허물이 많았기에 그만큼 더 허물을 벗어내는데 고통과 상처가 따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남아있는 허물이 “자존심”입니다.
저는 아직도 “나를 무시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회사 출근할 때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사거리를 지나갑니다. 터미널의 수위 아저씨들이 고속버스의 입출을 위해 가끔 승용차들의 통행을 막고 버스부터 출입시킵니다. 참으로 희한한 건, 왜 제 차가 지나갈 때 항상 통행을 막느냐는 겁니다. 제 차는 소형차 클릭입니다. 10년 동안 몰던 차인데, 출근하다 제 차 앞에서 통행 막히는 것이 일주일에 두세 번 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저는 “내 차가 후져서 만만해서 내 차를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수위 아저씨께 “내 차가 만만해 보이냐?”며 창문 열고 소리친 적도 있습니다. 사실 보면 어떤 때는 벤츠 앞에서 통행을 막는 경우도 있고 BMW 앞에서 막는 경우도 있는데, 유독 제가 걸리면 “차가 후져서 저런다”며 속으로 열 뻗쳐 합니다.
스스로 허물에 갇혀 숨막혀 하고 화내고… 그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앞으로 제 차 앞에서 통행이 막히면 문 열고 수위 아저씨께 “수고하십니다” 인사하고자 합니다. 운전 중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