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중보기도는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정작 중요한 단어들은 바로 그 뒤에 나오는데 자꾸 눈에 들어와 마음에 찔림을 주는 단어가 기억입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지체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대체 누가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고 있을까?
가장 먼저 기억나는 분은 예전에 총각시절 다니던 안양 작은 교회의 권사님입니다. 늘 큰 누님처럼 챙겨주시고 기도해주시며 다른 사람들에게 저를 변호해주시던 집사님인데 제가 그 교회를 떠난다고했을 때도 저를 축복해주시고 가끔씩 안부전화로 근황을 물어주시던 집사님입니다. 그러나 제가 그 분과그 교회를 위해 기도했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안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두번째로 생각나는 분은 어머니입니다. 늘저희 부부와 돈문제로 언성을 높이지만 그래도 명절때 가족예배를 인도하시며 저희와 형제들을 위해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와의 감정이 안좋은터라 지금껏 그 기도를 바란적도, 감사한적도 없었고 어머니를 위해 기도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세번째로 생각나는 분은 담임목사님과 나옥경 간사님입니다. 담임목사님은 뵐 때마다 저의 흔들리고 연약한 믿음을 애통해하시고, 나옥경간사님은 아내를 통해 늘 저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그런데 목사님을 위해서도 목장에서기도할 때 말고는 따로 기도한 적이 없고, 나간사님을 위해서도 따로 시간내어 기도드린 적이 없습니다.
남에게 기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공짜로 받고 남을 위해 기도함에는 인색했으니기도에 빚지다 못해 그 빚에 깔려 숨이 넘어간다해도 할말이 없는 채무자입니다. 남이 내 돈 빌려가서안 갚으면 기를 쓰고 그 돈 돌려받기 위해 애쓰고, 내가 남의 물건이나 돈을 빌리면 이자까지 더해서은혜를 갚는게 제 원칙인데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더 귀한 기도에는 왜 그리 받기만하는 거지 근성으로 살았나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내가 누구를 위해 기도했나 생각해보면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기도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요. 식사기도와 목장마침기도, 그 두 가지가 제가 하는 기도의 99%입니다. 가끔 힘든 목원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있지만 무슨 기도를 했는지 기억도 안나고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도없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도 어쩌다 생각나면 한번씩 기도할 뿐 그 아이의 아픔과 상처, 좌절 등에 대해 깊이 애통해하며 기도해본 적이 거의 없고 형식적으로라도 어머니가 저를 위해 하신 기도의 흉내도내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미안한 것은 늘 저를 위로해주고 감싸주는 아내를 위해서 따로기도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저보다 믿음이 좋은 아내가 알아서 잘 기도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일수도있지만 천성적으로 남을 생각할줄 모르는 이기적인 저의 모습 때문입니다.
떼부리는 기도외에 지체들을 위한 기도를 안하니 하나님이 지혜와 계시의 영을주실수 없고 그러니 마음의 눈도 밝아지지 못하여 늘 이런 모양으로 살고 있나봅니다.
적용) 오늘부터 제가 기도에 빚진분들을 위해 명단을 적어가며 최소 1분씩 기도하겠습니다. 빚지지않았다고 생각되는 지체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