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1:1~14 >>
1b.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
노니
어제 주일예배로 향하는 차안에서 집사람이 내게 물었습니다.
“구자광집사님 구제헌금으로 얼마를 하면 돼?”
“그런건 당신이 알아서 해”
“항상 결정하기 어려울 때면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더라”
이내 집사람의 볼멘 소리가 튀어 나옵니다.
예배 가기전 사소한 돌부리에 넘어져 몇 번 큰 싸움으로 번진 기억이 있었던 터라 이내 금액을 결정 했습니다.
“나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어” 아내의 최종 컨펌으로 더 이상 다툼이 되지않고 휘문 주차장에 무사히 파킹을 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아내의 손을 잡고 차안에서 십일조와 구집사님 구제헌금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항상 부족한 금액이지만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 주십사...
그리고 함께 구집사님의 유족을 떠올리며 우리 부부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을 때라도 누군가 당신을 향한 기도를 하는 공동체와 지체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눈물 흘리며 애통해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깨달아지기를...
구집사님이 판교채플 말씀축제 둘째 날 흘린 피값으로 판교와 이 땅의 말씀사역에 더욱더 풍성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는 구집사님의 바램은 이 땅에 남은 부인집사님과 두 자녀에게 여호아의 영광이 임하여 잠시 후에 요단강 건너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애절한 유언이었음을...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주일 오후에 모처럼 담임목사님과 함께하는 목자모임이 있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이쁜 우리 목사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설레임 반과 나눔중에 혹시라도 콕콕 찌르는 처방이라도 하시면 어쩌나하는 두려움 반으로 나눔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도 않게 처음 시작하는 목자님부터 나눔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제부터 큐티나눔을 올려 보라는 뇌성벽력(?)같은 처방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4시에 시작해서 7시 반까지 거침없는 나눔이 진행되면서 이미 너댓명의 목자님들이 간택이 되었기에 맨 마지막에 나눔 차례가 된 저는 이제는 끝났겠지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에 가슴이 콩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나눔도 끝나고 빨리 짐싸고 가야 하는데 목사님은 오늘 말씀처럼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그의 계획대로 행하셨습니다. “권집사 이제부터 큐티나눔 올리세요“
예전에 2년하고도 6개월동안 이슬비(현 '큐티인' 의 전신)를 쓰면서 원고 마감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했던 아픈 기억들에 간신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매일같이 큐티인 오른쪽 지면을 채우는 묵상의 기록들을 단지 컴퓨터 화면으로 옮기면 될 것을 무엇이 그리 피하고 싶은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나 혼자 몰래 적어 놓고 싶은 나의 죄악과 허물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싫었습니다.
둘째는, 눈꼽만치도 거룩하지 않은 인생인데 거룩한 척하며 나눔과 적용거리를 만들고 혼자 고민하고 있을 제 자신이 너무도 안쓰러웠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큐티나눔에 글을 올리고 나면 따라붙는 조회수와 열성팬의 리플에 제 마음을 빼앗기고 때로는 비교가 되어 흐믓함과 쪽팔림을 반복하게 되는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게 하시기 위한 주님의 마음으로 목사님이 이사야처럼 외치신 것이라는 마음이 깨달아지니 나에게 십자가를 드리워 주시는 목사님을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잠시라도 목사님을 미워했던 마음을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적용)
1. 다음부터는 목사님의 권면에 큰 소리로 ‘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2. 큐티나눔의 클릭수와 리플갯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습니다.